티스토리 뷰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4월15일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현실은 음울하다.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양당제의 폐해를 완화시키려던 선거법 개정은 비례위성정당의 각축으로 희화화되었다. 꼼수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제1야당에 근본적 잘못이 있지만, 헌법의 유린을 방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잘못도 크다. 진흙탕에서 같이 뒹구는 길을 선택한 여당을 두둔할 수도 없다.

몇 년 사이 진영논리가 유례없이 강화되면서도 진영 사이의 차별성은 더 엷어졌다. 두 진영의 행태와 인물 간에 정치적 지향의 차이를 넘어서 윤리적 차별성도 있다는 시각은 이제 폐기됐다. 독재에 맞선 역사는 진보진영에 ‘윤리적’이라는 후광을 주었지만, 그것은 지난 몇 년간 충분히 배신당했다. 전에도 진보진영의 권력남용과 비리와 추문이 있었지만, 개인의 일탈과 상대방의 비열한 공격이라고 변론할 수 있었다. 이제는 방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 왼편의 스펙트럼에 호의적인 사람들로서는 뼈아픈 이야기다. 

진보파의 윤리적 우위는 정말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보수세력의 집요한 공격이 가져온 착시인가. 기원전부터 보수파가 진보파를 공격하는 효과적인 논리는 ‘위선적’이라는 것이었다. 똑같이 엉망진창인데 고결한 척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맞는 경우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부당한 논리였다. 그것은 현실과 쉽게 타협한 세력이 도덕적인 열등감을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성찰을 망각한 진보의 타락은 너무 많은 유죄와 추문과 함께 실재가 되었다. 그것은 양식 있는 진보파들이 죽기 살기 식의 비루한 정치세계에서 차츰 밀려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마침내 윤리적 수준에서는 진보파와 보수파가 도긴개긴인 형국이 되었다. 상식적인 인물들이 사라지는 자리를 제 잇속에 빠른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그 와중에 진영논리는 왜 더 강화되는가. 원래부터 진영논리는 시쳇말로 장사가 된다. “우리 편의 이 점은 옳지만, 저 점은 반성해야 한다. 저쪽 편의 어떤 점은 문제지만, 다른 점은 배울 만하다.” 이런 당연하고도 이성적인 논법은 인기가 없다. 선악을 선명히 나누고, 피아를 뚜렷이 가르는 감정적인 언어가 사랑받는다. 현실을 민주와 반민주로 나눌 수 있던 시대에는 그것이 필요하고 효과적이며 심지어 윤리적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분법에 기초한 진영논리는 더 창궐하는가. 

우선 양 진영의 트라우마와 깊은 연관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과 재판으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서로가 상대의 문제점에는 섬뜩할 만큼 냉혹하고, 자신의 문제점에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너무 깊은 감정과 맞닿은 문제라서 상식이 진영논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가 이런 토양에 뿌리내렸다. 적의 올바른 말과 우리의 잘못을 하나라도 인정하면 곧 파멸로 이어진다는 절박한 심정을 두 진영이 공유하고 있다. 그 사이에 이성적 토론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거대 정당의 이러한 대치는 현재 선거제도 아래에서 서로 불리할 게 없다. 잘하면 1등이고, 못해도 2등이다. 내가 못해도 상대가 더 못하면 역시 1등이다.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잘하는 어려운 길을 갈 이유가 없다.

진영논리를 강화하는 다른 요인은 매체의 변화다. 랜선은 불가역적인 민주주의의 낙원으로 우리를 인도할 뻔했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거짓 예언자와 선동 정치가가 판치는 세상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능력이 정치인의 가장 큰 자질인 시대이고, 거짓과 의견이 사실을 짓누르는 세상이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이라는 책에서 도덕적 감정과 정치적 지향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바 있다. 그는 최근 어느 잡지에서 소셜 네트워크가 진영논리를 강화시키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을 구상할 때와 달라진 사회적 의사소통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촉구했다.

내일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질 것이다. 그러나 결과와 관계없이 민주주의는 재구성돼야 한다. 민주주의의 목을 조르는 거짓과 선동과 당파성이라는 좀비와 싸우면서 어떻게 공공의 선을 달성하고 파국을 막을 것인가. 역사의 주인이지만 자주 미망에 빠지는 시민은 어떻게 위대함을 자각할 것인가. 비웃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자. 길고 험난한 시간 속에서 역사가 끝내 길을 찾지 못한 적은 없었다.

<조광희 변호사>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