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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나 물건을 사는데 현금을 내면 카드보다 싸게 해주겠다고 한다. 탈세가 의심되는데 우선 현금을 내고 귀찮아도 국세청에 신고할까? 아니면 손해 보더라도 카드를 내? 그냥 눈 딱 감고 현금 내고 말까?

어떤 기업의 악행에 대한 뉴스를 보고 노발대발한 직후였다. 마트에 갔는데 아까 욕하던 회사의 제품이 다른 제품들보다 싸다. 이 회사 제품을 살까, 말까?

도덕적 난관은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웬만큼 꼿꼿하지 않고서야 이런 작은 일에서조차 도덕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관행과 규정이 다를 때가 많기에 도덕을 지키기란 더욱 어렵다. 규정을 고수하려 하면 융통성 없고 능력 없다는 비난을 듣기 일쑤다. 뜻하지 않게 주변인들에게 손해와 불편을 끼치게 되는, 일견 비도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들보다 한끝 더 반듯하게 살기도 이렇게 어렵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 도덕성을 높이려는 시도

그럼에도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도덕적인 사회를 꿈꾼다. 악덕 건물주가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갑질 상사와 거래처도 도덕적으로 바뀌고, 범죄와 부정부패를 일삼던 이들도 도덕을 지킨다면 얼마나 살기 좋을까?

포화상태에 이른 감옥으로 속앓이를 하는 미국에서는, 사람들의 도덕성을 높이려는 연구가 실제로 이뤄져 왔다. 예컨대 출산 시에 자궁 수축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남녀 모두에게서 평상시에도 분비되어 사람들 간의 협력과 신뢰를 높인다. 옥시토신 수치가 높아지면 타인을 보다 너그럽고 후하게 대하게 되며, 타인의 표정에 나타난 감정도 더 잘 추론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범죄자들에게 옥시토신을 투여하여 도덕성을 높이자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도덕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좋으나, 그 방법이 도덕적인지는 의문이다. 마음에 영향을 주는 약물의 강제 투여는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또, 도덕성을 함양하기보다는, ‘도덕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정한 방식을 따르도록 마음을 조작한다. 더욱이 옥시토신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내가 소속된 집단에 대한 유대감과 충성도를 높이는 대신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성과 배타성을 키웠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을 투여하면 내 집단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처럼 특정한 맥락이나 측면에서 ‘도덕적’인 태도는 다른 맥락이나 측면에서는 부도덕할 수 있다. 1962년에 나온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 중이던 알렉스는 범죄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하는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약물과 충격 요법이 동원된 교화 프로그램은 알렉스가 온건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올바르고 온건한 대응’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도 없게 되었다.

■ 뇌 속의 도덕

도덕성은 원칙과 이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지지만 도덕적 판단에는 감정이 크게 작용한다. 정리해고와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 다음 딜레마를 생각해보자.

다리 위에서 전차가 5명의 철도 인부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 옆에 있는 덩치 큰 행인을 밀어서 기차에 부딪히게 하면 인부 5명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신이라면 행인을 밀 수 있겠는가.

다수를 구하기 위해 행인을 밀어서 죽이는 행동이 합리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도덕적인가, 이런 동료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망설여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인을 밀지 않겠다고 응답한다고 한다. 누군가를 밀어서 죽이는 행위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거부감은 감정 반응에서 핵심적인 뇌 부위인 편도체에서 의사 결정에 중요한 뇌 부위인 복내측 전전두엽(vmPFC)으로 전해져, 의사 결정에 반영되게 한다. 그래서 복내측 전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다수를 구하기 위해 행인을 미는 선택을 비교적 쉽게 한다고 한다.

감정이 도덕적 판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감정 특성이 다른 사람들은 도덕 기준도 다른 경향이 있다. 예컨대 역겨움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내 집단에 충성하고, 권위를 존중하며, 전통과 순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보수적인 태도는 다른 집단과 인종을 배척하고, 개인의 자유와 소수의 인권을 억압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바른 마음>을 저술한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보수적인 태도도 대규모 사회의 유지에 필요하다고 한다. 개인행동에 대한 처벌이 없이는 공익을 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만능 도덕 기준은 없다. 서로 다른 도덕 가치들은 수시로 상충한다. 정상과 상식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도덕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들은 고결한 가치인 도덕에 순수하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런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불완전해도 소중한 노력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큰 걸까. 사람들은 도덕적이라고 여겼던 이에게서 잘못된 행동을 발견하면, 나쁜 사람이 극악한 행동을 했을 때보다 냉혹하게 대응하곤 한다. 착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기대를 배반한 것에 분노한다. 흉포한 사람 앞에서는 침묵하던 이들이, 덜 나쁜 사람에게는 마음 놓고 돌을 던지기도 한다.

물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법은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비현실적으로 높은 도덕 기준을 세워두고, 그 기준에 미달하면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다를 게 없다는 식의 흑백논리는 위험하다. 인간은 불완전함에도, 조금이나마 더 바르게 살아보려는 일체의 노력을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폄훼하기 때문이다.

탈세 업소에 대한 대응, 불매 운동, 직장 내 관행과 규정의 충돌 등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도덕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잘못에 대한 비판만큼이나, 흑백 사이에는 무수한 단계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금이나마 더 바르게 살아가려는 불완전한 이들의 불완전한 노력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어왔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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