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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집 셋 중 하나에 꼭 걸려 있는 액자 문구가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종교인 개업식 선물로 빠지지 않죠. 그런데 이것을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로 비틀어 말하는 현대속담이 생겼습니다. 중도반단(中途半斷),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거나 그럴 조짐이 보일 때 우스갯소리로 씁니다. 여기서 중도반단이야 하다가 중간에 때려치우는 걸 말하는 것이고, 그럼 용두사미는 무엇일까요?

용을 그릴 때 대개는 머리부터 그립니다. 눈초리며 수염, 이빨, 여의주, 뿔 등, 용을 상징하는 온갖 디테일들은 머리 부분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세세하게 그리고 나면 기운이 빠져 지치기 마련입니다. 맥이 풀리니 귀찮아집니다. 뒤로 갈수록 점점 대충 그립니다. 결국 끝은 뱀 꼬리로 마무리하고 말겠지요. 그게 용두사미의 뜻입니다. 용두사미를 우리 속담에서는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 그린다’라고 하지요. 꼼꼼하게 호랑이 얼굴을 그리다 차츰 귀찮아지니 무늬만 호랑이, 고양이 몸통으로 그립니다. 그림 이야기 대신 현실에 대입하면 아마도 ‘오픈빨 오래 못 간다’는 현대속담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이처럼 하다가 그만두거나 흐지부지되는 것은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공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에 비례한다고 여러 자기계발서에서 말합니다. 또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목표에 대한 의지 총량에 비례한다고 하고요.

벌써 6월입니다. 달력을 뒤로 넘기다 문득 앞으로 넘기겠지요. 그리고 한숨으로 뒤로 넘기며 남은 달수를 헤아릴 것입니다. 물이 ‘반잔밖에 안 남았다’와 ‘반잔이나 남았다’라는 이야기와 달리, 시간은 초조하든 느긋하든 꼬리가 계속 줄어듭니다. 남은 시간, 용 꼬리와 뱀 꼬리 중 과연 어떤 그림으로 마무리해야 할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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