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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채 5월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마에 땡볕이 따갑고 땀이 등짝에 밴다. 길가 잔디 화단에도 잡풀이 무성해져서 공공근로 나온 아주머니, 노인들의 잡초 솎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땡볕에 고생하는 분들이 안쓰러우면서도, 무슨 이런 신통치도 못한 일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동원하나 싶은 생각에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차라리 그냥 돈을 주지.

독일에 갔을 때 눈에 띈 풍경이 있었다. 환경 강국에다 깨끗한 나라라는 선입견과 달리 도시의 가로 주변에는 덤불이 무성했고 가로수들이 멋대로 자라 너저분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 이 사람들은 가꾸지 않는구나. 도로를 침범하거나 훼손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함부로 손대거나 베어내지 않는구나.

그러나 우리의 도시는 이질적인 것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도시는 선이다!’라는 구호가 있었다. 개발의 시대에 ‘불도저’라 불린 시장이 도시공학자와 손잡고 도로와 빌딩과 스카이라인을 일사불란하게 정리하면서 내세운 구호다. 그 이후 우리는 가지런하게 통일되고, 시원시원 뚫려있고, 말끔하게 개발된 모습을 도시의 미덕인 줄 알게 되었다. 도시 미관을 이유로 잡초나 뽑는 무용한 일에 사람들을 동원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잡초들은 또 뭔 죄인가. 원래 그들의 땅인 곳을 사람들이 차지하고서 끊임없이 죄악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시는 동일과 통일의 사고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되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위해서는 자유분방하고 어긋난 예외들을 효율적으로 통제 관리해야 한다. 도시에서는 이질적인 것들을 용납할 수 없다. 이런 도시적 사고방식은 한편으로는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먼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그 다음에는 또 이성을 인간의 중심에 두고, 다른 모든 타자들은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하여 우선은 자연이 밀려나고, 그 다음으로는 인간 가운데 못나고 모자란 이들이 밀려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사실인즉 자연이나 지구 입장에서는 인간이야말로 이질적 존재들인지 모른다. 빅히스토리에서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달라진 세계를 ‘인류세’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머니 가이아의 입장에서 기후 변화를 ‘인간 바이러스’에 대한 응답으로 보는 시각까지 있다. 재앙은 인간의 일일 뿐 가이아는 늘 그랬던 대로 버텨낼 거라는 생각이다.

이질적인 것들과 어울려 사는 연습은 무엇보다 인간 자신을 위해서 필요하다. 물론 사람들은 환경을 보호하는 이유가 인간 자신을 위해서임을 이미 알고 있지만, 사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핵발전소는 단순히 방사능 유출 때문에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를 피해서 가장 멀고 한갓진 곳에 건설된다. 그러나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대도시와 산업현장이다. 그럼에도 초고압 송전탑은 시골사람들과 산야의 희생을 요구한다. 이익은 집중되고 손해는 전가된다. 미세먼지는 더 복잡하다. 전에는 없었던 미세먼지 현상이 국내 화력발전 혹은 고등어구이 때문인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중국 때문이라는 국제정치적 이슈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환경 문제는 결코 인간 대 자연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와 정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핵발전소, 미세먼지, 기후온난화 문제가 시작부터 정치와 경제의 문제였다면 어떨까? 말하자면 핵분열이라는 과학적 현상, 먼지 발생의 메커니즘, 기온 상승처럼 자연과 사물들의 일상적 행동양식들이 독자적 목소리로 인간들의 의회에 참여하고 있었다면 어떠할까? 인간들이 지금 풀어야 할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이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니다. 그들은 일찍부터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었음에도 사람들이 끼워주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질적인 것들을 용인하는 사고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자연과 사물들의 독립적 지분을 인정하는 태도는 우리들 인간 자신에 대한 태도로 이어진다. 자연이 우리의 일원이듯 약자, 주변자, 소수자도 항상 인간들의 일원이었다. C S 루이스는 그의 책 <인간 폐지>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일부 사람들이 자연을 도구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이다. (중략)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은 그것이 성취되는 순간, 인간에 대한 자연의 정복으로 나타난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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