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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있으면 생각나고, 좋은 글을 읽으면 생각나고, 의논할 일이 생기면 생각나고, 네 또래 젊은이를 마주치면 생각나고, 멋진 자연을 만나면 생각나고, 바람 맑고 달 밝으면 생각난다. 이렇게 네 생각이 떠나지 않는데도 나는 배고프면 밥을 찾고 추우면 옷을 찾고 아프면 약을 찾곤 한다. 내가 어쩌면 이리도 무딜 수 있을까?” 조선시대 문인 김창협이 아들을 잃은 지 1년, 상복을 벗어야 하는 날에 지은 제문이다. 망자와의 관계에 따라 정해진 상기(喪期)를 강요하는 유교에 대한 비판이 일찍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어떤 경우 상기는, 살아남은 자를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 1년이라는 상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상복을 도대체 언제 벗을 수 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날로부터 1315일. 참 먼 길을 돌아 미수습자 장례까지 마무리되는 것을 보며, 가방에 달고 다니는 조그만 노란 리본을 어찌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가족이 모욕당하는 현실에 분노하던 시기는 지나갔고, 어처구니없는 논리와 속임수로 진상을 은폐하려는 이들의 목소리도 잦아들었으며, 촛불시민은 정권을 교체했다. 그러니 이제 상복을 벗듯이 리본을 떼어놓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걸까.

그런데 과연 변했는가? 안전은 전혀 아랑곳없이 그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고 바다로 나설 수 있도록 조장하고 방관하며 낄낄대던 돈의 논리들은 무력화되었는가? 불행한 사고가 사회적 참사로 이어지는 과정에 개입된 온갖 비리와 협잡들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는가? 엄청난 공공의 비용과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재해로부터 안전한 시설을 마련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냈는가? 이제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삼는 나라에 살고 있는가?

근래 우리 사회를 바꾼 힘이 공동의 슬픔에서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슬픔에 계속 빠져 있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 낱낱의 기억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바꾸어나가야 할 시기다. 김창협은 지나친 슬픔으로 몸을 손상시키지 말고 이제 그만 생각에서 아이를 놓아버리라는 주위의 권유에, “그렇다고 어떻게 생각까지 안 할 수야 있겠느냐”고 나직이 반문한다. 김창협보다 훨씬 무딘 나는, 언제까지나 잊지 않을 자신이 없다. 여전히 리본을 떼어내지 못하겠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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