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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에게도 근심이 있습니까?”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답했다. “없다. 군자는 벼슬을 얻기 전에는 뜻을 즐기고, 얻고 나서는 다스림을 즐긴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즐거울 뿐 근심할 날이 없다. 소인은 그렇지 않다. 벼슬을 얻기 전에는 못 얻으면 어쩌나 근심하고, 얻고 나서는 잃으면 어쩌나 근심한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근심할 뿐 즐거운 날이 없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홍계희는 62세 되던 해 봄, 이조판서의 벼슬을 받았으나 극력 사양하고 여러 번에 걸친 영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영조는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겠다고 판단하여 해임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홍계희는 한밤중에 등불을 밝히고 기쁨의 시를 지었다. 여러 동료들 역시 축하하며 화답하는 시를 보내와서, 관직에서 해임된 기쁨을 적은 시들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홍계희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던 영조는 그 뒤로도 줄기차게 여러 벼슬을 내렸고, 더 이상은 사직의 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벼슬살이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홍계희는 앞서 지은 시들을 모아 <해관지희첩(解官志喜帖)>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벼슬살이로 인한 근심이 있을 때마다 이 기쁨의 시들로 위안을 삼으려는 뜻이다.
우리의 기쁨은 대개 무언가 바라던 것을 손에 얻었을 때 주어지지만, 문제는 그 기쁨이 지속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얻기 전에는 없어서는 안될 것처럼 노심초사 근심하던 대상임에도, 막상 내 것이 되고 보면 그 기쁨도 잠시뿐, 마치 원래부터 나에게 있던 것처럼 당연시한다. 그러고는 점차 그것이 없는 삶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 근심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즐거워하며 뜻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벼슬의 유무에 따라 기쁨과 근심이 바뀔 일도 없겠지만, 이런 경지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홍계희는 그러나 소인과는 다른 제3의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품은 뜻은, 고향에 돌아가 서책과 거문고, 바둑판, 술 한 병을 곁에 두고 늙어가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벼슬살이는 근심이지만, 물러남의 기쁨을 상상하며 그것을 적은 시를 때때로 꺼내볼 수 있음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가진 것의 기쁨조차 누리지 못하는 소인으로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가지지 못한 것을 즐거워하는 방법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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