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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지나서도 푸근하던 날씨가 어제 오늘 갑자기 추워졌다 싶더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일자가 내일로 다가왔다. 대학입학전형이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수능 성적이 당락에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지대하다. 직장인의 출근 시간과 대중교통 배차 간격, 항공기 이착륙 시간까지 조정될 정도로, 수능은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된다. 

특히 이번 수능은 코로나 확진 및 격리 대상 수험생은 물론 일반 수험생도 무증상과 유증상으로 시험장을 분리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 치러진다.

언제부턴가 ‘수능대박’이 수험생을 응원하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엿이나 초콜릿 등 합격 기원 선물이나 시험장에 늘어선 후배들의 응원 팻말 등은 물론, ‘수능대박’이라고 쓴 부적까지 유행하고 있다. ‘대박’이라는 말은 도박 용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박(博)’이 원래 윷놀이 비슷한 노름을 뜻하는 글자이고, 노름판의 판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노름에서 판돈보다 훨씬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을 대박이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유(攸)는 사람(人)을 몽둥이로 때려서 피(l)가 흐르는 모양이다. 여기에 빛난다는 뜻의 삼을 합쳐서 이루어진 글자가 수(修)다. 자의든 타의든 피가 나도록 열심히 갈고닦아서 빛이 나는 경지에 이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능(能)은 원래 곰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이 글자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면서 웅(熊)을 따로 만들게 되었다. 음이 비슷해 빌려 쓴 것이긴 하지만, 힘이 세고 재주도 많은 곰이 ‘능력’을 뜻하는 글자로 사용되는 것도 그럴듯해 보인다.

피나는 노력으로 갈고닦은 능력을 발휘해야 할 수능에 대박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노력에 더해 운도 따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까지 탓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보다는 수능 고득점과 대입 성공만이 대박이고 그와 다른 길은 모두 쪽박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 더 문제다.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들의 대박을 기원함과 동시에, 다른 길에 서는 모든 청년들에게도 재능과 노력의 끝에 대박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연재 | 송혁기의 책상물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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