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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나라는 고대 중국 남방에 있던 나라다. 그래서 적월북원(適越北轅), 즉 월나라로 가면서 수레 방향을 북쪽으로 돌린다는 말은, 목적과 전혀 상반되는 행위를 비유한다. 허균은 잘 알려진 <유재론(遺才論)>에서, 온갖 이유로 길을 막아놓고서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상황을 통렬히 지적하는 말로 이를 사용하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오늘날 사람을 선발할 때 어머니가 천첩이거나 개가한 과부가 아닌지를 따지지는 않으니 허균의 시대보다 더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조건들이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 더해졌음을 알 수 있다. 출신 지역과 학벌, 정치 성향과 과거 전력 등으로 장벽을 쌓아두고, 이런저런 은원(恩怨) 관계로 얽힌 제한된 인맥 안에서 선발하려다 보면 인재가 없다는 한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인사 검증이 연달아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전 정부의 참으로 편협한 인력풀에 황당했던 기억이 오래지 않은데, 새 정부 역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이른바 5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깨끗한 인재를 고르다 보니 선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해명을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말 각자의 분야에서 책임 있게 일해 온 능력자들이 우리나라에 이렇게까지 없으리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다. 특히 과학계와 문화계의 인사에는 무지 혹은 의도된 왜곡이 개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다. 다시 내려진 대통령의 인사시스템 개선 지시가 유효하려면, 알게 모르게 형성된 장벽과 인맥은 없는지 냉철한 외부자의 시선으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통치자의 가장 큰 덕목은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는 데에 있다. 시골구석이나 말단 병사, 혹은 항복한 적장이나 도둑 무리, 창고 수리공 등에서 탁월한 인재를 발탁했다는 그 옛날 성군들의 이야기를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이 시대 각 분야의 상식적이고 건강한 인재들이 폭넓게 검토될 수 있는 인사시스템의 구성이 정말 중요하다. 허균의 일갈처럼, 하늘이 준 인재를 버린다면 이는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다. 하늘을 거역하고 온전할 수 있는 통치자는 없다. 내달리기에 앞서서 겸허하게 수레의 방향을 점검할 때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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