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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상(弱喪)’이라는 말이 있다. 젊은 나이에 타지에 나와 살다 보니 고향을 잃어버려서 돌아갈 길도 모르게 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디 장자(莊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려고 이 말을 했지만, 자신의 참모습을 잊고 헤매듯이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길 잃은 아이’의 막막함이 ‘귀향’의 아늑함과 대비되면서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표현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조선 문인 이식(李植)은 억지로 굽혀서 신기한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소나무를 보며 약상을 떠올린다. 외모를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처신을 약삭빠르게 하면서 남의 시선을 끌고 인기를 누리는 데에만 급급한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며 아등바등하는 일들 가운데 정작 ‘자신’은 없다는 사실이다. 위로 자라는 본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인위적인 조작에 길들다 보니 어느덧 아래로 향하고 옆으로 퍼지는 것이 자신의 본래 모습이기나 한 듯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소나무처럼, 남에게 잘 보이려는 데에만 신경을 쏟다가 정작 자신의 본래 모습은 까맣게 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일만 하는 아이가 사랑받는다. 그렇게 칭찬만 들으며 잘 자란 아이들이 학교가 요구하는 점수를 잘 받고 공적 기관과 사기업의 수요에 적합한 인재로 만들어진다. 유순하게 말 잘 듣는 가지들만으로 보기 좋게 모양을 내기 위해서는, 뻣뻣해서 길들여지지 않는 가지를 초장에 베어버려야 한다. 그렇게 거세되고 손상되면서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소나무를 애지중지하던 사람들도, 숲속에서 자기 본성대로 우뚝하게 자라난 소나무를 보면 우러러보며 공경한다.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평소 예뻐하다가도 어느 순간 업신여기는 일이 있지만,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 사람을 보면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공경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위인(爲人)이 아니라 위기(爲己)의 공부가 중요한 이유다. 애완의 대상이 될 것인가, 공경의 대상이 될 것인가.

이 쉽지 않은 결정과 실천 앞에서 만나는 공자의 말은 준엄하다. “자신의 참모습을 잃고도 살아 있다면 그것은 요행으로 죽음을 면한 상태일 뿐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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