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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학자의 졸업식 축사가 회자되고 있다. 필즈상 수상자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축사의 구절을 인용하며 폭넓게 호응하는 모습이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각자 삶의 자리에서 겪는 고민과 좌절의 어딘가를 만지고 위로하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게 졸업식 축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계를 넘나드는 면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축사만큼 상투적인 말, 혹은 글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우리는 축사나 주례사를 문학에 넣지 않는다. 전통시대 한문학의 중심 장르였던 묘지문, 상소문 등의 대부분을 오늘날 문학으로 인정하기 힘든 것도 그 목적성과 상투성 때문이다. 특히 장수를 축원하는 수서(壽序)의 경우 워낙 목적이 규정하는 내용이 정해진 장르여서 당시에도 진정성을 의심받곤 했다. 하지만 그런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투성을 벗어난 작품은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축사의 주인공 허준이 교수는 이전의 강연에서 “수학은 경계를 끝없이 넘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축사에서도 “수학은 무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한다”는 전제 위에서, 수학자의 주요 업무가 그 가운데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이며,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된다고 했다. 주어진 경계를 넘고 동떨어진 대상을 잇고 당연한 통념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뛰어난 문학이 지니는 힘이라는, 저 케케묵은 생각을 새로운 방식으로 불러내는 말이다.

이 독특한 축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는 ‘친절하기’다. 주어진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비교와 강박 가운데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하기만 하는 삶. 이런 삶은 우리를 모질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 숨 쉴 틈 없이 빽빽한 당연함의 경계를 훌쩍 벗어나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 너그러운 받아들임의 순간, 비로소 나와 타인의 경계마저 허물어지고 진정한 ‘친절하기’가 가능해질지 모른다는 상상. 축사에서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이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을지 모르는, 경계를 넘어서는 아름다움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연재 | 송혁기의 책상물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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