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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출신의 18세 청년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고인은 정착지원금 대부분을 대학 기숙사비 등으로 지출하고 월 30만원의 자립수당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다른 학생은 모두 집에 간 방학에 혼자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일어난 일이어서, 인근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힌 지 60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만 18세에 복지시설의 보호가 종료되는 제도에 대해서는 오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작년 7월 국무회의에서 만 24세까지 보호받을 수 있고 자립수당 지급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발표되었고, 12월 법안 개정을 거쳐 올해 시행령이 의결됨으로써 6월2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고인은 개정 시행 이전에 종료 시점이 도래한 경우지만 기존 제도하에서도 대학 입학을 사유로 보호기간 연장은 가능했다. 그럼에도 본인이 퇴소를 선택한 데에는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보육원에서 지내기 어려웠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정착지원금의 대폭 증액을 비롯한 여러 제도의 개선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방학에는 퇴소해야 하는 기숙사에서 그나마 계속 지낼 수 있었고 관계자와의 상담 기록도 있으니 완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차라리 좋으련만, 참 어려운 문제다.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용어를 ‘자립지원청년’으로 바꾼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자립이라는 게 실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기가 처음으로 혼자 걷는 순간을 떠올린다. 몸짓 하나하나에 환호하며 여차하면 받아 안아주려는 어른의 눈을 맞춰가며 뒤뚱뒤뚱 한 걸음씩 내딛는 그 모습을. 그렇다. 자립도 기댈 언덕, 믿는 구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이들에게 금전과 제도의 지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립감과 절망감을 어루만져줄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인데, 일가친척도 마을공동체도 무너져버린 우리 사회에서 어떤 근본적인 대안이 있을까. 고인이 남겼다는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다”는 메모만 계속 눈에 밟힌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연재 | 송혁기의 책상물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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