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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떠나온 옛 연인을 떠올리듯 카탈루냐를 생각한다. 그곳은 스페인에 속해 있지만, 스페인과 너무도 기질적으로 달랐던, 무엇보다 스페인 제국이 저지른 정복의 역사와 투우라는 잔인한 스포츠를 싫어했던, 뼛속 깊이 자유와 평등의 정신이 각인된, 도로 표지판에 카탈루냐어를 영어나 스페인어보다 먼저 쓸 만큼 자기만의 언어와 문화에 자부심이 컸던, 그 때문에 오랜 세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던 스페인 속의 비(非)스페인이라는 걸 이방인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각별한 여행지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시적이고 낭만적이고 유쾌하게 이방인에게 관대하던지, 또 건축과 공간을 다루는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그 감각은 또 얼마나 근사하던지, 안토니오 가우디와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의 후예들답게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들이 없는 듯 저마다 얼마나 사랑스럽게 예술적이던지(정말이지 카탈루냐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 주어진 하나의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남달랐다) 그곳을 떠나기가 싫었다. 카탈루냐 구석구석 내딛는 내 발소리와 사랑에 빠질 정도로 나는 그곳에 흠뻑 빠져 있었고 그곳에 속해 있는 나 자신을 좋아했다. 물론 내가 아는 카탈루냐는 바르셀로나와 그 일부 외곽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서 다른 곳 어디로도 가고 싶지가 않았다. 떠나기가 싫어서 두 달 하고도 하루를 살고 불법체류자로 분류되는 날이 되어서야 배를 타고 바르셀로나를 떠나 로마로 갔을 정도다.

그러다 몰타 여행 중에 만난 스페인 친구 ‘이시’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발렌시아를 거쳐 아라곤 지역으로 갔다. 아라곤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발렌시아의 어느 광장에서 느닷없이 털실과 바늘을 사다가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그 별거 아닌 시간이 왜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순간으로 두고두고 떠오르는지 생각했다. 어느 미용실 밖에서 아무 생각 없이 뚱보 여자가 이웃집 여자의 머리를 매만지는 걸 보며 ‘발렌시아의 미용사’로 사는 삶도 괜찮겠구나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험난하고 장엄한 아라곤의 산맥과 카스티야의 텅 빈 들판이 가진 무한한 매력을 스페인을 여행하는 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 걸 보기 드문 축복으로 여길 수 있게 됐다.

그때 알았다. 스페인의 태양이 뜨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다 가볼 만하다는 걸. 가볼 만한 정도가 아니라 어디나 다 저마다 가진 고유의 매력으로 반짝거린다는 걸. 가장 스페인다운 도시라는 세비아, 그라나다, 코르도바, 말라가 같은 안달루시아 지방(세비아에서 작가 수업을 시작한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표현대로 ‘너무 부드럽고 관능적이어서 통속적이기까지’ 한 지역색)은 물론 리스본행 야간 열차를 타기 위해 잠깐 들른 수도 마드리드까지 모두 말이다.

그 때문에 오랜 세월 독립을 열망하며 스페인 중앙정부와 싸우는 카탈루냐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그들의 독립 의지를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카탈루냐가 떨어져 나가면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상당 부분 그에 의지하던 스페인의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될까 동시에 걱정하게 된다.

그 때문일까? 중앙정부의 체포영장을 피해 벨기에로 도망간 바르셀로나 주지사 소식이나 그 이후 한껏 시들해졌다는 ‘카탈루냐의 독립 열기’에 대한 뉴스를 지면으로 접하면 실망하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 안도하게 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처럼 역사상 유례 없는 재정위기 속에서 분리 갈등까지 심화된 스페인을 응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에게 인생의 이런저런 짐들을 내려놓고 천국에 가까운 곳에서 그저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몸안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걸 체험하게 되는 ‘느림과 치유의 여행 버라이어티’ tvN의 <윤식당>이 스페인으로 갔다는 소식이다.

카나리아제도의 테네리페섬이라고 한다. 최근 한 인스타그램 블로거에 의해 공개된 뉴스에 의하면 나영석 사단의 <윤식당2>의 팀은 지금 한창 그곳에서 촬영 중이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을 상상해 본다. ‘테네리페섬 바닷가에 있는 매력적인 작은 도시’.

상상해 보건대 <윤식당>의 멤버들은 지속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폐기된 스페인의 오래된 낮잠(시에스타) 문화를 부활시켜 발리에서보다 더 여유를 부리고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저녁 있는 삶은 기본이고 하루 다섯 번의 끼니를 즐기던 이들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곳은 음악과 춤, 미식, 격의 없는 대화를 사랑하는 멋진 낭만주의자들의 땅이다.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는 적당한 노동과 여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삶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화산 폭발을 걱정해야 하는 발리는 물론 이래저래 심란하기 짝이 없는 나라 스페인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윤식당>은 이번에도 유유자적 행복하게 보여줄 것이다. 게다가 당신들에게는 아무리 봐도 결코 싫증 나지 않게 우리를 품어 주는 위대한 자연과 문화유산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스페인이여, 카탈란이여! 힘내라!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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