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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똥! 할 때요. 하루 중 가장 정신없는 때가 출근 전인 것 같아요. 아파트 15층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유치원 차 기다리잖아요. 그런데 애가 느닷없이 ‘엄마 똥!’ 이러는 거예요.” 


“아이가 느닷없이 수족구병이 생기기라도 하면 미치는 거죠. 어린이집에서는 오지 말라고 하니까요.”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수업시간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출석만 확인하고 나가서 쉬면 안될까요?”


최근 몇 년간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이나 여대생들에게 들은 ‘시간’과 관련해 갈등을 겪은 이야기이다.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특성 중 하나는 ‘정확함’에 기반을 둔 시간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이 지정한 출근시간에 도착하여 퇴근시간 전까지 최대한의 실적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생산성이 높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어린 자녀를 돌보는 책임을 갖고 있는 여성, 생리하는 몸을 가진 여성은 학교와 직장에서 요구하는 시간규범과 매우 갈등적일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들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몸이 원할 때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일상이다. 이러한 행위와 관련된 시간들은 통제의 영역 바깥에 있는 불규칙함을 속성으로 한다. 아이에게 소위 ‘똥 싸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대소변과 관련된 생리적인 욕구를 조절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아이들이 전염병에 걸리는 것도 예고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아이들이 느닷없이 전염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직장여성들은 “갑자기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직장에 휴가를 낼 것인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다.


여성들의 몸과 관련된 시간들은 통제된 공간에서 시간규범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것과 갈등적이기 쉽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생리통의 정도는 매우 다양하다. 가령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극심한 생리통을 경험하는 여성들은 편안한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따라서 생리통을 경험하는 여성들에게 수업시간 내내 바른 자세로 앉아 교수의 말에 경청해야 하는 시간, 직장에서 정해놓은 출근시간에 도착하여 정해진 업무를 해야 하는 시간은 몸과 관련된 시간과 외부의 시간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현대인들은 가족을 포함하여 자신의 일상을 계획하고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새벽녘에 잠이 깨면 시계부터 찾아 시간을 확인하고 또다시 이불을 끌어당겨 잠을 청한다. 우리들은 하루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수없이 시계를 보며 활동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 남성들은 주로 일 중심의 활동 속에서 시계를 바라본다. 여성들은 몸, 생로병사, 돌봄과 관련된 야성의 시간과 고도통제사회의 문명화된 시간규범과의 충돌, 그에 따른 갈등을 경험한다. 같은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듯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매우 다른 시간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 내 욕실에서 볼 수 있는 벽걸이 시계. 생리적인 행위도 단위시간 안에 맞춰야 하는 사회가 되어 남녀 공히 똥도 잘라가며 누는 것은 공통점이라고 해야 할까?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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