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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어휴, 남편은 그냥 월급날 담장 너머로 월급봉투만 던져주고 갔으면 좋겠어.” 


“1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가 되고, 3대가 덕을 쌓아야 격월부부가 된다는데 조상이 원망스럽다.” 


이제 쉰 살이 가까워지니까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느라 관계가 소원했던 옛 친구들과의 만남이 최근들어 시작되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가 자식을 대학교 보낸 비법에서 시작해 남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수다 보따리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다들 결혼생활 15년차를 넘고, 이혼율이 가장 높은 40대 초반을 훌쩍 넘어서다 보니 자포자기 상태에서 남편과 살아가는, ‘괴담(怪談)’ 수준의 이야기들도 터져나온다.



물론 아내를 ‘공주마마’ 모시 듯하며 살아가는 남성들이 들으면 다소 억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가족 안에서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담당하는 데서 생겨나는 중년 이후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남성은 가족의 생계를, 여성은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 기대를 한다. 역설적이게도 성별에 따라 다른 역할이 기대되면서 남성은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을 안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여성은 남성들이 안 하는 이 모든 역할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가족의 생계를 여성이 책임지는 여성가구주의 비율은 4가구 중 1가구에 달하고 있고,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성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부부의 애정을 깊게 하고 더욱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로의 역할에 따른 경계를 지우는 것이 필요하다. 집이 쉼터일 수 있는 남성이 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같이 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매우 구체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메뉴에 대한 고민, 장보기, 밥하는 노동을 함께하지 않는 존재를 위해 대신 노동을 짊어져야 하는 자는 상대방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주 인용되는 통계청의 발표를 보더라도 맞벌이 여성의 유급노동시간이 남성보다 1시간20분가량 짧다. 그에 반해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2시간38분인데 남성은 19분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부부의 대화시간이 30분 이내인 것, 즉 대화시간 부족이 부부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하고, 부부의 대화방법이 부부갈등 치유 프로그램의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작금의 상황에 대한 변화 없이 부부의 대화시간이 길어진다면 오히려 부부갈등만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혼율을 더욱 높일 우려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편의 부재에서 휴식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기혼 여성들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부부관계, 가족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말이 다가오고 있다. 당신은 휴식이 있는 주말이 기다려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여가가 배어 있는 주말을 남녀 똑같이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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