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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사건, 나는 2년여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갑상선암 수술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유·무형의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암 중에서는 가장 예후가 좋다고 이야기되지만 그럼에도 ‘암’자가 붙은 수술을 받고 나니 인생의 가치관이 전환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진도를 더 나가게 되었다. “인생 한방이다” “내일은 없다. 그냥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자” 등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작년 어느 날 당시 고등학생, 중학생이던 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아무리 조심해도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어. 엄마가 갑자기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내 미리 유언을 남기마.”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향하여 사뭇 진지하게 “결혼하지 말거라”라고 말하였다. 물론 덧붙이기는 하였다. “연애만 평생 하면서 살아.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싶으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아니면 입양하는 방법도 있어.”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다. 고등학생인 아들의 반응 “저는 결혼할 거예요. 왜 결혼하지 말라고 강요하세요?” 중학생인 딸의 반응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요.” 


롯데호텔서울의 웨딩홀에서 꽃가루를 맞으며 결혼식 행진을 하고 있는 커플 (경향DB)


비록 미성년인 두 아이의 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결혼은 남성들에게 여전히 꽤 매력적인 제도이고 여성들에겐 그렇지 않은 측면이 크다. 아무리 세상이 성평등하게 바뀌었다고 하지만 결혼을 하는 순간 남성들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출산해줄 아이의 엄마이자 자신들의 조력자가 되어줄 여성들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대신 여성들은 결혼제도로 들어오는 순간 ‘무수리’ 인생을 각오해야 한다. 결혼했으니 ‘아이의 엄마’가 되어야 하고 남편을 어떤 식으로든 보살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결혼하면 남성들의 용모는 나날이 반짝반짝해지고, 여성들은 1년 뒤 집안과의 갈등조정자, 가사노동자로서의 과중한 역할에 얼굴에 다크서클이 입까지 내려오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결혼제도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비혼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2009년 이후 여성이 남성보다 5%가량 많다. 그러나 졸업 후 취업문은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굳게 닫혀 있는 상황이고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여성이 대화라도 통하는 남성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여성에게 여전히 의무를 짊어지우는 결혼제도로 들어가게 되는 결심을 하게 되기는 더더욱 쉽지 않으리라. 여성들의 학업적 성취와 평등의식이 높아지는 속도에 비하면 남성들은 여전히 더디다. 심각한 문화적 지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 중에서 여성자살률 1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는 것은 동일한 사회·문화적 원인을 갖고 있다. 여성이 집안일과 육아에 대하여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취업 문턱은 높고 유리천장이 존재하며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각종 폭력이 난무하는 한, 여성들의 집단적 우울감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며 여성들의 결혼기피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어이, 아들. 뭐 결혼을 꼭 할 것이고 엄마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지?” 아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나의 유언 전달식은 마무리되었다. “너는 결혼하지 못할 것 같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가 ‘엄마 같은 여자’ 타령하는 남자거든. 호호호.”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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