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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애도 몇 번 해봤죠. 근데 있잖아요. 어쩜 그렇게 끝이 똑같은지 모르겠어요. 딱 2년 되는 순간에요… 저한테 뭐라고 하냐면, ‘돈 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헤어지고 또 괜찮은 사람을 만나 데이트도 하고 골프도 치고 잘 만나요. 근데 만난 지 2년만 되면 또 똑같은 말을 해요.” 


최근 31세에 이혼해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다가 지금은 크게 성공한 여성 사업가와 술 한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 중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2년이 되는 순간의 씁쓸함에 대해 토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씁쓸함’을 둘러싼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결론은 2년이 되는 순간에 “돈 빌려달라”는 제안을 한 남성이 여성 사업가의 재물에 탐이 나서 접근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제안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안정적인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한 종종 경제적인 곤궁함에 처하게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인으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아 큰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아는 사람끼리 돈거래하지 말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문제는 돈을 제대로 갚지 않아서 사람 잃고 돈 잃는 불행이 이어진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현실적으로 나를 신뢰해주는, 아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만난 여성 사업가에게 씁쓸함을 안겨준 남성이 돈을 빌렸다가 약속한 시기에 부채를 상환하고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았다면, 아마도 두 사람의 친밀성은 더욱 높아지지 않았을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이 명실상부하게 유지되려면 가정을 위해 지출할 돈이 많아져야 한다. 어린이날에 “애들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라면서 뽀로로 편지지에 100장의 편지를 쓰고 선물이 없다면 아이들은 편지의 장수만큼이나 큰 실망감에 떼굴떼굴 바닥에서 구를지도 모르겠다. 어버이날에 “어머니, 아버지.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만 한다면 어버이의 마음에 큰 서운함을 안겨드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적인 열린 공동체, 복지국가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주의’의 근원에는 가족의 경제적 부양이 자리 잡고 있다. 가족은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함으로 유지되는 듯하지만, 실상은 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집단이다. 흔히 법전에서 ‘가족법’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민법>의 ‘제4편 친족, 제5편 상속’인 것을 보더라도, 가족의 절반은 ‘상속’이라는 돈의 흐름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의 경제적 지원이 없으면 학업, 혼인, 직업, 주택, 건강 등이 유지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에 대한 의존이 ‘가족애’라는 말로 포장되기 쉽다. 친구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 사회변혁 운동에 빠져서 가족에게 소홀했던 사람들이 가족으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 “친구가 밥 먹여주냐. 동지가 밥 먹여주냐”다.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이 기반이 된 튼튼한 사회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구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에서는 친구가 밥 먹여주고, 동지가 밥 먹여주는 사회다. 가족 안에서 배타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자원 흐름의 물꼬를 바꿔서 주변의 어려운 동료, 이웃, 친구들에게 베풀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제 막 성공했지만 외로운 한부모 여성 사업가도 ‘2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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