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와 욕망 중에서 무엇을 대표하고 반대로 무엇을 배제하는가의 게임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치는 주로 과거와 현재의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 대표와 배제의 전투가 벌어져왔다. 예를 들어 과거 역사의 평가나 현재 연말정산 셈법은 전통적인 전장에서의 게임들이다. 요리 프로그램에 비유하자면 ‘오늘 뭐 먹지?’의 질문을 중심으로 정치가 굴러간다. 하지만 이제 ‘내일 뭐 먹지?’라는 미래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기에 우리는 진입했다. 이 미래정치 시대의 대표와 배제 게임에서 새로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유권자는 젊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와 주민등록증이 없는 지구생명체이다.

도대체 왜 이 새로운 미래정치 영역이 중요해질까? 왜냐하면 전 지구적 저성장 시대의 등장으로 미래의 먹거리를 둘러싼 양극화 게임이 더욱 격렬해지는 세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현기증 나게 발전하는 기술은 미래를 더 이상 막연한 예언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적 예측과 예방의 영역으로 전환시켜가기 때문이다. 이제 의료만이 아니라 모든 정책 이슈에서 예방 등 미래 가치는 필수적 고려사항이다. 셋째로, 나누어 먹을 밥상 이전에 우리가 사는 터전인 지구행성 자체가 기후변화 등으로 심각한 존재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 미래정치는 어떤 정파에 유리할까? 원론적으로는 야당에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수는 원래 전통적 가치에 강하고 반대로 진보는 미래 실험주의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소위 진보 정치는 자신들의 강점이어야 할 공감, 참여 등의 가치와 태도에서 최근 완전히 실패했다. 시민 다수에게 현재 야당들은 자신들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촉발시키지 못한다. 더 심각한 점은 지금 새로운 영역인 미래정치에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최근 연금을 둘러싼 여야의 첫 전투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는 이 미래정치에서 야당이 그리 유능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이다. 오히려 다양한 이해관계의 갈등을 부각시키고 대통령은 그 위에서 유체이탈로 훈계하는 ‘분열주의 포퓰리즘’에 미래세대라는 새로운 무기까지 등장한 셈이다.

오늘날 새정치민주연합이 과거와 현재의 투쟁만이 아니라 미래정치에서도 무능한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다. 최근 공적연금을 강화하려는 그 선의와 책임감은 훌륭하지만 자신들이 아직 준비되지 못한 전투라는 성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먼저 미래세대와 깊이 대화를 나누고 배워야 하지만 그런 발상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그리고 내가 치매인지 모르지만 지난 선거의 결과 등에서 시민들이 이 중요한 아젠다의 방향을 충분히 의회에 위임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국민의 대표인 자신들이 합의하면 된다는 발상은 과거 근대 초기 귀족들의 대의제를 연상시킨다.

더 나아가 수십년 후를 책임 있게 이야기하려면 우선 자신들의 근대 교과서를 버리고 전혀 다른 미래학을 연구하고 나서 기금 등의 정책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기존 지식에 지나치게 자신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자신들이 예측하는 미래에 대해 연구한 보고서를 먼저 공개했으면 한다. 미래 기술, 인구, 질병, 지구 행성의 현기증 나는 변화 등 수많은 변수들 및 이들 간의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 있는 예견 속에서 연금, 노동, 자본 등 이슈의 혁신 아젠다를 내놓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 연금 정국 이전부터 미래 실험주의 정당에 더 가까운 곳은 새정치연합이 아니라 놀랍게도 새누리 정당이다. 미래세대를 유권자로 확대하기 위해 최근 주도적 모습을 보인 정당은? 미래세대가 주도하는 새로운 쿨한 정치 실험을 선도하는 정당은? 오픈 프라이머리 같은 시민 연결형 정당으로의 혁신을 선도하는 정당은? 의원 연령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정당은? 경악스럽게도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새정치연합이 아니라 새누리 정당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담론과 상징적 인물군을 여당에 빼앗긴 야당은 다가오는 총선, 대선에서 미래세대 담론과 상징적 인물군도 빼앗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감, 참여, 실험, 미래, 이 네 가지 브랜드가 다 없는 야당은 필연적으로 집권에 실패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안철수 의원은 문 대표가 제안한 혁신기구 위원장직을 거부했다. (출처 : 경향DB)


지금 야당들이 해야 할 일은 대담하게 미래정치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선 다양한 세대들이 공존하는 정당으로 혁신 및 미래 세대들에게 권한을 크게 위임하고 미래에 대해 새로이 배우려는 자세가 우선이다. 어차피 당장 눈앞의 선거 결과들도 참 일관되게 예측에 실패하는 이들이 50년 후의 미래에 대해 단단하게 정책을 설계할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용기가 너무 두렵다.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