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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결론냈다. 홍 지사는 불구속 기소 방침이 확정됐다. 이 전 총리는 기소 여부를 최종 조율 중이나 역시 불구속으로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성완종 리스트’ 인물 중 처음으로 사법처리 방향이 정해지는 셈이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는 증거와 증인, 진술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증거 인멸 정황도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속 처리’로 맥없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런 식이라면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과연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2억원 이내’면 불구속으로 기소하는 ‘내부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죄질의 경중과 국민의 법감정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는 시종 혐의를 부인해온 데다, 측근들을 시켜 증인을 회유하고 허위 진술을 강요한 정황이 드러났다. 만일 일반 형사사건 피의자가 이러한 행태를 벌였다면 당연히 구속을 피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수사 초기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측근들을 증거 인멸 혐의로 잇따라 구속했다. 이들은 구속하면서 정작 검은돈을 받은 쪽의 증거 인멸 행위에 대해선 애써 눈을 감고 있다.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자리 잡은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 유리문 너머로 21일 검찰 관계자가 걸어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검찰 앞에는 이제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6명의 의혹이 놓여 있다. 이들 중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조직·자금을 다루는 핵심 직책을 맡았다. 그럼에도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에 쭈뼛거리는 눈치다. 홍 지사 등에 비해 물증이나 목격자 등이 없다는 한계를 내세운다. 하지만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한 구체적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성 전 회장의 한 지인은 “2012년 10월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성 전 회장이 가져온 현금 6억원을 1억, 2억, 3억원씩 가방 3개에 나눠 담았다”며 여야 중진의원 3명을 실명으로 거론했다. 이 중 새누리당 인사 2명은 ‘성완종 리스트’에 포함된 정치인이다. 앞서 한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검찰에서 대선 직전 성 전 회장이 박 후보 캠프 부대변인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 정도의 단서와 정황이라면 미적댈 이유가 없다.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대선자금 수사를 계속 머뭇거리고 회피할 경우 검찰 불신만 키우게 될 것이다. 수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흡하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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