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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술자리 안주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인가 갑론을박하는 광경을 가끔 보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누가 대한민국과 더 거창하게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이 문명의 급격한 전환기에 가장 잘 준비된 후보인가 하는 질문이다.

나는 한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정치가들을 존경한다. 그들과 달리 나 같은 소시민은 하다못해 몇 달 전 고3 딸이 전공 선택 때문에 고민할 때에도 조언을 못했다. 너무나 현기증 나게 변화할 미래를 염두에 둘 때 선뜻 지금의 자문에 대해 정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미래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50% 실업률까지 발생할 디스토피아를 언급하는데 도대체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되는 걸까?

최근 다행스럽게도 미래를 준비하는 담론과 다양한 조직들이 생기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소득 주도 및 포용적 성장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공동체론, 안철수 의원의 정의로운 경제론, 남경필 경기지사의 혁신경제와 연합정부론,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한민국 통합론 등은 주목할 만한 미래 실험들이다.

문재인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소득주도 성장과 광주형 일자리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하지만 과연 이들은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미래에 대해 정말 깊이 생각하고 있는 걸까?

산업화 시대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의 시대정신이었다. 민주화 시대는 ‘우리도 한번 민주주의를 누려보자’로 전환되었다. 지금에서부터 향후 최소 10년간은 ‘우리도 한번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시대로 이행하는 혼란스러운 과도기가 될 것이다. 이 이행기를 관리할 리더십은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길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경희대에서는 재학생 중 거의 1만명의 학생들에게 현재와 미래 가치에 대해 질문하는 놀라운 실험이 전개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행복, 자아실현, 사랑, 친교, 인간관계 등이 등장한다. 이미 미래 세대들은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인간적 관계 국가론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경희대 학생들의 미래 리포트를 이미 연구한 것처럼 영국에서는 ‘관계 국가론(Relational State)’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어 왔다. 임채원 박사의 소개로 접하게 된 이 담론을 들여다보니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낡은 진보의 국가주의 분배론이나 보수의 작은 국가론을 넘어 어떻게 국가가 융합적 성격의 이슈를 해결하고 개별 인간들의 행복한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은 묻는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여성에게 인센티브를 주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일까? 그녀와 남편, 시부모, 친구 등 관계의 망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더 인간답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에게도 추가적인 의문이 떠오른다. 인간과 지구의 행복한 관계를 고려할 때 아이를 더 낳도록 장려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나는 그들의 관계국가론에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를 첨가하고 싶다. 즉 인간적 관계국가 혹은 네트워크 국가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함께 살아가는 친교의 네트워크를 말한다. 더 나아가서는 지구 속에서 인간의 겸손한 위치를 확인하고 상호 유익한 미래를 책임지는 의미에서 인간적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세계시민 교육, 선거구제, 개헌 등 모두 다 중요한 의제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도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관습적인 사고와 파편적 대안 이전에 전혀 새롭게 닥쳐올 미래를 먼저 연구하고 이에 대비하는 자신의 철학을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 복지, 행정, 정치 등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전제를 다시 백지상태에서 전면 점검해야 한다. 벌써 과감히 각 분야의 답안을 제시하고 시험장을 의기양양하게 나가는 그 용감한 태도를 제발 버리고 시민들과 함께 미래 리포트를 같이 써나가는 태도로 전환했으면 한다.

다가오는 큰 선거는 이에 대한 치열한 경쟁과 협력 및 그 결과로 새로운 가치의 연합정부여야 한다. 아이슬란드는 집단지성으로 개헌을 시도했다는데 대한민국은 시민의 미래 리포트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칼럼을 마치고 나서 다시 딸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휴, ‘뇌섹남’이 아닌 나로서는 정말 모르겠다. 그런 나를 잘 알기에 딸은 조언을 구하지 않고 정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과연 나는 딸의 미래에 조금이나마 괜찮은 조언을 해주는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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