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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으로 평가받는 ‘훈민정음 해례(解例) 상주본’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경북 상주시 배모씨 집에서 그제 불이 났다. 이날 화재로 목조 주택 1채가 전소되면서 집안에 있던 골동품과 고서적 등이 모두 불에 탔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실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배씨가 일절 입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이번 화재로 훈민정음 해례본이 훼손됐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사고다. 천만다행으로 화재 현장에서 상주본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더라도 이런 국보급 문화재가 아무런 안전대책도 없이 개인의 손에서 허술하게 보관돼 왔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게다가 상주본의 행방은 벌써 수년째 오리무중이다. 문화재 보호체계가 이 정도로 엉망이라는 얘기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의 사본(왼쪽)과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상주본 (출처 : 경향DB)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은 2008년 배씨가 처음 공개했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간송미술관 소장본과 같은 판본이면서도 간송본에는 없는 훈민정음 반포 당시 연구자의 주석이 달려 있고 보존 상태도 좋아 학술적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골동품 업자 조모씨(2012년 사망)가 “배씨가 상주본을 내게서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민형사 소송이 벌어졌다. 배씨는 절도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민사소송은 패했다. 소유권을 인정받은 조씨는 사망 직전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그러자 배씨는 상주본을 감춘 채 지금껏 버티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배씨 집을 몇 차례 압수수색했지만 찾지 못했고, 문화재청도 배씨를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상주본이 안전한지 밝히는 일이다. 그러려면 우선 행방부터 알아야 한다. 현재 상주본의 소유권은 문화재청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배씨는 자신의 명예회복과 함께 소유권을 보장해야 상주본의 행방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를 개인의 소유물로만 여기는 배씨의 인식이 딱하고 안타깝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배씨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한다. 문화재청도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어쨌든 이런 국보급 문화재가 화재·도난·손괴에 대한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된 책임은 문화재청에 있다. 차제에 문화재청은 배씨에게 좀 더 확실한 협상안을 제시하면서 끈질기게 설득하고 압박하는 일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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