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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과 다가오는 2017년 대선은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을 것이다. 2012년 대선은 첨예한 진영 대결이었다. 새누리당은 정권재창출을,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목표로 했다. 선봉장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었으니, 지지자들로서는 강렬한 감정이입이 가능했다. 지키느냐 뺏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국민들도 양편으로 선명하게 갈라졌고, 선거 당일 할아버지와 손주는 서로 어느 세대가 더 많이 투표하는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 선거에서 중도 전략을 별로 믿지 않았다. 한편에서 다른 편으로 전향할 사람은 어차피 별로 없었다. 거기에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낮았던 청년세대와 진보층의 투표율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양상이었다. 어정쩡한 중도보다는 선명한 의제가 더 나은 전략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2017년 대선은 이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 시대의 비전이 중심이 될 것이다. 진영 대결이 아니라 국민통합이 화두다. 민심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일주일 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양자대결이든 5자대결이든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닷새 후에 이루어진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다시 1위를 내주었다. 촛불정국의 최대 수혜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때 문재인 턱밑까지 추격했으나 약간 주춤한 모습이다.

서울대 국가정책포럼이 지난 2~4일 서울, 경기 및 6대 광역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조사 결과는 간단한 지지율 조사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기존 새누리당 지지층의 무려 68.0%가 이탈했는데, 그 대부분인 53.3%가 지지정당이 없는 부동층으로 남았다. 야당의 기존 지지층도 대거 이탈했다. 민주당 기존 지지층에서 28.8%가 이탈했고, 그중 과반수인 18.2%가 부동층으로 남았다. 국민의당 지지층의 52.1%가 이탈해서 절반이 넘는 31.5%가 부동층으로 남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태 이전 부동층은 38%였는데 사태 이후 53.4%로 늘었다. 각 정당의 충성 지지층이 대선 때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뻔하니 이탈자들의 지지후보를 보자. 새누리당 이탈층에서는 반기문 18.4%, 이재명 9.2%, 문재인 8.1% 순이다. 민주당 이탈층은 문재인(26.5%)과 이재명(23.5%)을 놓고 갈등하는 가운데 박원순(11.8%)이 제3의 대안이다. 국민의당 이탈층에선 이재명(28.9%)이 단연 1위이고 반기문(13.2%), 문재인(10.5%) 순이다. 촛불정국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지지율이 2~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던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결과이다. 반면 4당 시대를 맞아 반기문이 제3지대로 합류하게 된다면 반기문 지지가 새누리당 지지가 된다는 죄책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지지율은 더욱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

2017년 대선은 절반이 넘는 부동층을 설득하는 자의 승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은 진영 싸움이었지만, 이번 대선은 다르다. 양당이 아닌 4당 구도이고, 정권교체의 의미도 퇴색했다. 친박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을 할 가능성은 0에 가깝고, 만약 비박신당이 제3지대의 중심이 되어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이 정권교체인지 아닌지도 애매하다. 부동층은 선명한 의제가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주기를 원한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연인원 800만이라는 촛불집회 참가자 중 새누리당 이탈자가 10.7%였다. 촛불의 바다에 불과 한 달 전까지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무려 85만6000명이나 있었다는 말이다. “이게 나라냐”면서 촛불을 들고나온 그들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줄 합리적 대안을 누가 제시하는지 눈여겨보고 있다.

문 전 대표에게 개헌 논의에 선을 긋고 강성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어차피 대선 전 개헌은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공연히 의심의 눈초리와 비토 그룹만 키우게 된다. 당장 못하더라도 논의를 시작하자고 할 수 있지 않나. 반면 일련의 외연 확대 시도나 섀도 캐비닛 공개는 책임 있는 모습이었다. 차기 당선자는 인수위원회도 거치지 못하고 당선 즉시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예비내각을 준비하는 것이 책임 있고 안정적인 자세이다.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국민의당 논평은 초조감으로 읽혔을 뿐 아니라 야권의 차분한 대선 준비를 방해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부동층이 절반을 넘고 4당 구도로 짜인 대선판은 무조건 몇 차례 더 요동치게 되어 있고, 지금의 지지율은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굳히기가 아니라 새판짜기를 주도하는 자가 이긴다. 비박의 창당선언으로 이미 그 주도권의 일부는 넘어갔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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