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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사청문회가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정당의 견해가 서로 판이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이목을 집중시키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논란을 잘 살펴보면 후보자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도 국회의원들의 질의 내용과 그들의 판단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교문화심리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있다.

사람을 각각 독립적인 개체로 보는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 간의 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 중심의 사고와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간관계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 문화에 속한다. 즉 나와 상대방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소속한 집단의 구성원들과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 관계를 지속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가 남인가”하는 말이 생길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내가 소속한 ‘내집단’의 구성원들이고 내집단 구성원끼리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행동을 더불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내집단에 소속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 즉 ‘외집단’ 사람들에게는 매우 냉정하고 비판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문화를 ‘집단주의’ 문화라고 하는데, ‘우리’라는 단어와 개념이 언제나 전제된다.

공직 후보자가 국회의원인 경우 인사청문회 제도가 시작된 이래로 29명 전원이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고 모두 채택됐다. 국회의원이 아닌 후보자들은 그 사정이 매우 다르다. 후보자의 직무수행 능력뿐 아니라 개인 신상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파헤친다. 때로는 후보자의 해명이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부정적 공격을 줄기차게 이어간다. 물론 국회의원은 선거라는 검증 과정을 한차례 거쳤기 때문에 흠결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차별의식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후보자의 자질을 사실에 입각하여 본질적으로 검증하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는 뜻이 된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원들이 문화적 틀에 갇혀서 국가의 중요 업무를 수행할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치에서는 언제나 여당과 야당이 있기 마련이고 정치적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대립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정당의 존재 이유가 정권쟁취에 있다고 하지만, 이 존재 이유에 앞선 큰 전제는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하는 정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가 대의 민주주의의 상징이고 구체적 산물이라면 국회의 의견이 국민의 의견과 비슷하게 또는 서로 교감할 수 있게 협의되고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야당들의 태도는 이런 점에서 아쉽다. 야당 의원총회 논의과정과 결론 도출과정을 보면 ‘집단사고’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징후가 점쳐진다. 사회심리학은 집단사고가 나타나게 되는 조건으로 강한 응집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외부의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고, 권위적 지도자하에서 대안 검색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집단사고로 인하여 나타나는 징후는 잘못될 리 없다는 생각(환상), 결과에 대한 집단적 합리화, 외집단에 대한 편견 조성, 이견 표출의 자제 등이다. 이로 인해 만장일치가 이뤄진 것처럼 착각을 하고 이탈자에 대해서는 압력을 가하는 현상을 보인다. 현재 야당 의원들이 의총에서 보이는 징후와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집단사고에 의한 결정이 가져오는 열악한 의사결정의 문제점은 집단의 목표를 이룩하기 위한 대안적 방안을 검토하는 데 실패한다는 점이다. 이런 의사결정에서는 위험요소의 점검이 부실해지고 관련 정보 수집이 불완전해질 뿐 아니라 비상시 대책을 강구하는 데에도 실패하게 된다.

이렇게 집단사고를 통해서 열악하거나 부실한 의사결정을 하는 정당과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민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야당과 국회의원들이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보여주는 정치적 행태는 그들이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집단으로 전락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우리의 정치 수준이 이렇게 저열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발전이 꾸준하게 이루어져 온 것은 어찌보면 대단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들이 눈앞의 이해관계와 정략에만 몰두하지 않고 국가적 현안에 대해 지혜를 짜내고 고민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국민 어느 누구가 박수를 치지 않겠는가?

이종한 | 대구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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