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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사람은 가고자 할 장소를 이미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 직선으로 가고자 한다”고 하였다. 비록 강과 산과 같은 자연 지형물 때문에, 건물과 같은 인공적 구조물 때문에, ‘우회’는 도시민들의 이동의 숙명인 것은 분명하나 인간의 마음에는 ‘직선’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내재해 있다. 이런 ‘최단거리’의 동선에 관한 욕망은 보행부터 고속철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신규로 건설되는 경전철에도 이러한 기본적 원칙이 적용된다.

‘경전철 공약’을 내세운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작년 7월 발표했던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의 10개 신규 노선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경전철의 ‘건설’은 비록 재정이 8조원 이상 들어가는 대규모 건설인 것은 분명하나 ‘도로 건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경전철은 도로에 비해 친환경적이고, 안전하고, 보행과 자전거의 흐름과도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이 도시철도의 형식이나 운영방식의 문제를 놓고도 아직은 논의할 것이 많이 남아 있지만 가장 심도 깊이 논의해야 할 사항은 ‘노선의 형태’, 즉 ‘노선의 굴곡도’이다.

프랑스 건축가가 디자인한 지하철 노선도


좋은 노선의 형태와 나쁜 노선의 형태는 무엇일까? 명확한 정답을 내기란 힘들어 보인다. 다만, ‘최대 인원’을 ‘최소 시간’에 이동시키는 노선이라면 최소한 공리주의적으로는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승차인원이 많은 곳만 연결하다보면 노선의 형태가 ‘직선’이 되지 않고, 노선의 형태에 ‘굴곡’이 생기게 되며 ‘최소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 즉 수혜 인원과 통행시간의 두 가지 가치는 ‘좋은 노선’을 놓고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도시철도는 장기적 관점에서 ‘수혜 인원’의 확보가 보장된다. 즉 설계 당시의 ‘수혜 인원’ 확보 가치보다 짧은 ‘통행시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 굴곡이 많은 노선은 통행시간적 차원에서 ‘나쁜 노선’인 게 분명하다. 개개인의 통행시간 증가는 집단적인 시간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지하철 3호선의 ‘수서~압구정’ 구간을 보면 ‘ㄷ자 형태의 굴곡’을 확인할 수 있다. 수서, 일원역과 같이 매봉역 이전에서 탑승해 압구정 북단으로 향하는 모든 시민들의 통행시간을 살펴볼 때, 매봉~압구정 구간이 우회를 하지 않고 ‘압구정~학동~역삼~매봉’을 연결한다면 약 7분을 절약할 수 있다. 일일 이 구간의 이동인원은 보수적으로 계산하더라도 왕복 50만명 정도 된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 일일 약 6만시간, 2억9000만원의 손실이 이 짧은 구간에서 매일 발생하는 셈이다.

물론 굴곡 그 자체가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도시는 강이나 수로를 중심으로 혹은 그것을 경계로 발전했고, 그 굴곡이 고스란히 도로가 되었다. 그 도로는 ‘축’이 되고 그 ‘축’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 경전철을 비롯한 철로도 그러한 ‘축’에 자리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선 형태의 질에 중요한 척도는 ‘도로에 비해 우회하는가’로 볼 수 있다. 서울의 신규 도시철도 노선을 보면, 목동선은 도로에 비해 우회가 심하다. 동북선과 서부선은 어느 정도 도로 수준의 직선 형태를 띠고 있다. 의정부 경전철 굴곡은 아마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형태를 띠고 있다. 용인 경전철, 송파~성남 경전철 모두 ‘직선’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고 도로에 비해 심한 굴곡을 보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승객 확보와 수혜 지역 확장을 위해 의도적 우회를 지지하기도 한다. 이는 공사비와 운영비 충당을 위한 단기적 경제 논리일 뿐이다. 굴곡이 심한 경전철은 ‘직선으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도, 이동 시간을 줄이려는 교통수단의 근본적 목적에도, 대중교통 경쟁력 확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김남석 |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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