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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일수록 시중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통제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곤 한다. 유언비어의 내용이라는 것이 대부분 정권이나 지배세력에 대한 반감이나 적대감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통제되고 사회적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까닭에 유언비어의 형식을 빌려 여론이 형성되고, 정권이 기를 쓰고 억누르려 할수록 대중의 반감이 더욱 거세지면서 유언비어는 정권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유언비어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면서 대중들은 실로 오랜만에 대통령이 직접 유언비어 단속을 지시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됐다. 박 대통령이 철도 민영화와 관련해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엄명을 내린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검찰과 경찰은 걸핏하면 ‘유언비어 발본색원’이라는 으름장을 놓곤 한다. 최근에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과 관련해 인터넷에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이 또다시 전가의 보도를 뽑아 들었다. 엊그제 경찰청이 “심각한 허위사실이 지속적으로 유포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서는 내사에 착수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의 죽음과 시신을 둘러싼 의혹이 시간이 갈수록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까닭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초동수사 등 검찰과 경찰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경찰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변사자가 유 전 회장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온갖 유류품이 널려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했고, 결과적으로 40일이 넘도록 방치해 더 큰 혼란과 불신을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경찰인 것이다.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행태로 일관해온 경찰이 의혹을 제기하는 시민들을 ‘유언비어 엄정 대응’ 운운하며 겁박하고 있으니 이런 자가당착적인 코미디가 어디 있는가.

새민연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찾아 연구원에게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부검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 : 경향DB)


경찰이 유언비어 수사 등 무리수를 연발하는 이유는 여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찰청장 경질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경찰의 숨은 의도가 무엇이든 정부와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방식으로 봉쇄하려는 것은 더 큰 저항과 불신을 낳을 뿐이다. 경찰이 굳이 유언비어 수사를 하겠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부실수사와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을 조사해 그 책임을 철저히 묻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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