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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시론]고통을 기억하자

opinionX 2014. 11. 13. 21:00

우리는 기억 때문에 행복해하거나 슬퍼하고 또 그것 때문에 분노하기도 한다. 기억은 우리의 욕망에 형식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기억을 지배하면 곧 그 삶을 지배하게 된다. 많은 독재 권력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부 노인들이 박정희에 대한 향수로 불의한 세력들에게 투표하는 것도 이 잘못된 기억이 만든 오도된 욕망의 형식 때문이다.

최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바로 이 기억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 속 주인공 폴은 부모의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말을 잃은 인물이다. 그의 불완전한 기억 속에 나타난 아버지의 폭력이 어머니를 죽게 했다고 생각해 그는 아버지를 극도로 혐오한다. 하지만 마담 프루스트의 도움으로 그는 조금씩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의 기억이 자신을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게 만들려는 이모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은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에 대한 분노로 그는 손가락을 다쳐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되지만 기억 속의 아버지와 화해하고 자신의 욕망에 새로운 형식을 부여한다. 그 형식이 바로 우크렐라라는 아주 인간적인 악기와 중국인 아내를 선택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출처 : 경향DB)


이모들이 기억을 은폐한 것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그를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서다. 자기 부모를 죽게 한 피아노의 기억을 지워야 했기 때문이다. 기억의 은폐나 왜곡은 이렇듯 대부분 어떤 목적으로 인간을 몰아가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억압과 폭력을 동반한다. 이 억압과 폭력을 벗어나는 길은 기억을 회복하여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진실을 통해 올바른 기억을 만들어 놓을 때 우리는 세월호의 슬픔을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에 책임을 져야 할 권력은 그것을 은폐하고자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야 계속 세월호 사고를 있게 한 통치의 형식을 유지하고 권력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곪아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하지만 그 근본적 원인이 제거되기는커녕 아직 그 상처마저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북청년단 재건까지 운위되는 등 폭력과 억압의 암울한 역사가 재현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문학을 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진지한 성찰의 한 방식인 문학은 우리가 잊으려고 하는 고통을 참으로 고통스럽게 드러내는 일이다. 문학은 고통을 드러내 그것을 배태시킨 사회의 어둠을 고발하고 추문화하는 일이다.

그런데 더러 사람들은 이제는 모두 잊자고 한다. 고통스러운 과거와 사건은 잊고 행복한 앞날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고통을 잊어버리는 사회는 경박해진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지한 성찰보다는 가벼운 쾌락에 몸을 맡기고 순간의 오락에 탐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진실을 드러내 보이는 비극을 보지 못하고 안이한 해피엔딩으로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렇게 고통을 잊어버리려는 우리의 정신적 나태가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몰고 간 비극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고통이 정말 싫은 것이라면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되고 그것과 대면하여 그 진실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그러한 고통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15일 오후 2시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창작 도구이자 결과인 ‘연장’을 들고 광화문 세월호 광장으로 나가겠다는 까닭도 그것일 것이다. 이제야 세월호의 아픔들이 던진 질문들에 답해나가야 할 초입쯤에 우리는 다다라 있는 것이다.


황정산 | 시인·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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