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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지난 8월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병영을 완전히 바꾸겠다며 민·관·군으로 구성한 병영혁신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어제 내놓았다.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병영 혁신의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소소한 문제들만 나열하는 것으로 그쳤다. 특히 ‘군복무 가산점제 부활 추진’과 같이 병영 개선의 효과는 의심스러우면서 사회적 갈등만 불러일으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병영 내 인권침해를 막는 핵심 장치는 군사법원의 독립, 국방 옴부즈맨 제도이다. 그런데 혁신안은 두 제도를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군 판사와 군 검사가 군 지휘권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 현재의 군사법원 제도다. 이 제도는 지휘관의 부하인 일반장교를 재판관으로 두고 지휘관 재량으로 형도 깎아 줄 수 있다. 이렇게 지휘관이 절대 권한을 행사하는 군사법원을 온전한 의미의 사법기관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병영 내 인권침해가 근절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상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은폐·축소가 가능한 병영 구조이다. 그런데 그걸 방치한 채 지휘관의 선의에만 기대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군사법원을 지휘권 밖에 두는 확실한 방법을 외면하면서 병영을 혁신한다는 건 한마디로 모순이다.

군 미적응자 치료시설 그린캠프 (출처 : 경향DB)


국방 옴부즈맨 제도는 군 외부의 독립적인 감시라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행정부 산하에 두기보다 독립적인 기관 아래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군은 지휘권이 우선이라는 입장 때문에 두 제도를 모두 기피하고 있다. 병영을 인권침해 지대로 만들어 놓은 군이 뒤늦게 병영 혁신을 하겠다면서도 지휘권에만 집착하는 이런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국방부는 지휘권 훼손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는 인권을 지휘권 아래에 두겠다는 위험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결코 용인할 수 없다.

국방부는 아직도 ‘어떻게 인권을 보호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휘권을 보장할 것인가’라는 전혀 다른 생각에 골몰하고 있음을 이번에 분명히 드러냈다. 따라서 국회 특별위원회는 국방부의 자기 개혁을 기다릴 게 아니라 인권을 존중하는 군대로 바꾸기 위한 문민통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민에 의한 군 통제의 원칙에 토대를 둔 체제이다. 그런 문민통제가 없기에 인권침해뿐 아니라 군 관련 비리도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인권침해 방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국방부에 병영 혁신 과제를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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