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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최근 원자력학계 교수들이 ‘정치적 잣대는 안된다’ ‘안정적 전력수급이 안된다’ ‘국민 합의가 없었다’면서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 언제까지 원자력발전을 하려고 했는지 묻고 싶다. 앞으로 100년? 탈원전은 속도가 문제이지 가야 할 길이다. 원전사업자로부터 막대한 용역비를 지원받는 일부 교수들이 이런 성명을 주도해서 내는 것은 원전산업체 이익을 대변하는 데 불과하다. 학계는 단체 행동보다는 과학적인 보고서를 제시하는 게 타당하다. 원전의 많은 미해결 현안을 학계가 어떻게 해결할지 일말의 확신도 없는 한 장의 성명서는 그저 어린아이 불평 수준이다. 국민 합의도 그렇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은 국민이 합의하고 시작했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충격으로 놀라 다수호기 위험을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원자력계는 이미 예측 능력을 상실한 확률론적 안전을 내세우며 자기 방어에 급급했다. 이건 국민 합의인가? 그런데 이제 탈원전한다고 하니 국민 합의를 요구하면 논리적인가?

원자력발전이 화석연료 발전 감소에 기여한 바는 분명하다. 그러나 원자력 확대는 무경쟁의 독점적 국가지원과 과장된 전력수급계획에 기인한다. 값싼 가격도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켜 왔다. 이미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국가가 인구 400만 대도시 부산권에 원전 10기를 배치한 것은 도를 넘은 수준이다. 인천에 단 1기라도 원전을 짓는다면 촛불 시위가 일어날 것이다. 인천은 안되고 부산은 10기라도 괜찮다는 것인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평가산식에 따르면 원전 10기는 10배가 아닌 그 이상의 위험도를 가진다. 그럼에도 설비 규제완화 목적으로 인구중심지 거리 산정에는 적용한 적도 없는 기준을 들여와 거리를 10배 이상 축소했다. 그뿐인가? 월성 1호기는 최신기준을 실질배제한 평가와 불법절차로 허가취소 판결을 받았다. 이를 검토한 전문위원들이 원자력학계이다. 원전 비리, 원자력연구원의 방사성폐기물 무단투기, 핵연료 무단반입, 원자로건물 철판부식 등에 대해서도 원자력학계는 침묵했다. 무엇보다 40년에 걸쳐 포화된 사용후연료 문제를 해결 못한 것에 학계는 책임 없는가? 경제성도, 안전성도, 실현성도 없는 고속로와 재처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허위 과장하며 막대한 국민 돈 낭비를 응원한 주체는 누구인가. 원자력학계는 성명서가 아니라 반성문을 썼어야 했다.

우리나라 초기 원전 8개를 공급한 웨스팅하우스, 아레바 등 세계 굴지 원자력회사는 수출원전 건설비 증가로 도산해 기술지원도 불투명하다. 프랑스 전력공사는 국가 보조로 도산한 아레바를 떠안은 데다가 30기 수명연장을 포함한 58기 안전성 증진에 120조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며 원전 비중 25% 감축법에 따라 노후 원전 수명연장을 포기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빌미로 원전 건설과 수출에 열을 올리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뿐이다. 국내 원전 25기는 이미 충분히 많다. 세계적 추세를 무시하고 자기 전공분야 관련 산업만 지키려는 것은 비과학적 수구주의이다. 동남부 원전 지역이 활성단층이라는 것은 확실해졌으며, 대형 지진에 대한 주민의 두려움을 불식시킬 과학적 증거가 없는 한 월성의 중수로는 조기에 폐기해야 한다. 러시아조차도 체르노빌 사고 후 1989년에 활성단층이 발견된 크림반도의 원전 1기 건설을 중단한 바 있다.

물론 급격한 에너지 전환엔 어려움도 있다. 그러나 신규 원전 비용은 계속적으로 상승하는 데 반해, 재생에너지는 기술발전과 급격한 비용 하락으로 믿기지 않던 일들이 현실화되었다. 풍력은 이미 미국, 영국 등에서 수명주기발전단가(LCOE)가 신규 원전을 앞질렀다. 재생에너지 증대에 따른 각종 기술적 어려움도 영원히 해결 못할 것도 아니다. 지난 4월30일 독일은 화력발전을 거의 중지하고 85%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했다. 재생에너지가 10%만 넘어도 전력안정성이 없다는 원자력학계 주장은 현실을 도외시한 것에 다름 아니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원전의 단계적 축소는 어려워도 가야 할 길이다. 원전이 저렴하면 거기서 번 돈으로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을 반대할 국민은 없다. 원전 2기 안 지으면 10조원이 생긴다. 40년 기간을 둔 단계적인 원전 감축은 원자력계에 충분한 시간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향후 자원을 가동원전 안전관리 및 감시기술, 고온고압 공정기술, 해체 안전 및 최적화, 사용후연료 저장·처분 기술, 방사선안전 관리, 장반감기 핵종제거 및 우주전원·난방기술 등 실질적인 데 집중할 수 있다. 그럼 인력도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기대해 본다.

박종운 | 동국대 에너지 원자력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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