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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을 공식 방문한다. 방미 중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하고 텍사스주 휴스턴도 방문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취임 후 세 번째 미국 방문이다. 대통령의 방미 성사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진위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 모두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발병하기 전에 정해진 일정이다.

메르스로 국가가 위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대통령의 최근 지지도 급락이 이를 말해준다. 메르스를 진정시키지 못하는 한 지지도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삽시간에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국가 위기 시 최고지도자는 국민과 함께 있어야 마땅하다. 위기는 고집과 자존심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방미는 따라서 재고해야 옳다. 미국 방문을 철회하더라도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째, 양국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이 현재 없다. 지난 4월 사실상 타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을 정상들이 만나 추가적으로 합의해야 할 일은 없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최종 합의문에 서명하고 의회로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 정부는 국회 동의도 필요없다고 판단하기에 미국의 최종 ‘처분’만 기다리면 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역시 대통령 간 회담에서 논의할 일이 없다고 미국 고위관리가 이야기했기에 이 또한 정상 간 의제에서 배제되어 있다. 북핵과 관련해서는 당장 묘안이 나올 분위기도 아니며, 그렇다고 오산 미군 공군기지로 배달된 탄저균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유감 표명을 할 형편은 더욱 아닌 듯하다.

둘째, 정상회담은 대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 고위실무자들 간 주요 의제들을 두고 이미 합의에 이른 문건 또는 성명서가 작성된다. 자화자찬식 미사여구로 꾸며진 보도자료와 함께 화기애애한 대통령들의 사진과 훈훈한 회담 뒷이야기가 양념으로 첨가되면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 정상회담은 사실상 의전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미국행에 오를 때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셋째, 정상회담에서는 요구보다는 이런저런 약속을 해야 한다. 특히 우리 측의 요청으로 이번 회담이 성사된 것이라면 우리가 미국에 줘야 할 선물이나 약속이 있을 것이다. 외교에 공짜는 없다. 세계에서 제일 바쁜 인물 중 한 명인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하는데, 그렇고 그런 이야기만 나누고 헤어질 리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가지고 갈 약속과,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반대에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 등 미국이 제시할 불편한 이야기들을 잠시 피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메르스를 이유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할 시간을 벌어보는 것도 외교전략상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로, 국내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메르스 환자 수가 계속 증가할 경우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패착으로 판가름날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도망간다’는 인상만 주기 마련이다. 청와대 본관 출입구에 열감지기를 설치한 것을 두고 ‘자기만 살겠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인터넷상에서 들끓지 않는가.

이런 이유들로 대통령의 방미를 취소하는 플랜 B가 가동돼야 한다. 국민과 함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방문을 전격적으로 철회하는 방안이다. 어쩌면 영리한 우리 외교 관료들이라면 이미 방미 취소 관련한 출구전략을 두고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을 수 있다. 이를 결코 수용하지 못할 동맹국 미국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비확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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