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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어록을 읽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우문현답’이라는 말에 새로운 뜻이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지난 1월26일 대통령관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긴 대통령의 말입니다. 현장을 찾아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서류작업만 하고 앉아있을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질타하고, 부디 문제 해결을 위해 부지런히 발로 뛰라는 격려와 당부의 깊은 뜻이 담긴 중요한 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34일째 대국민담화를 발표합니다. 또 읽어보니 나름대로 비장하고 절절합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듭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지난해 5월19일 그 담화 발표 이후, 세월호 침몰과 수백명의 희생에 대해 지금까지 대통령은 잘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자신의 말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을까요? 혹시 대통령 자신부터 ‘부작위의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작위의 죄’란 누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를 뜻합니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지닌 대단히 특별한 절대 권력을 지닌 직위이지요. 마땅히 국민 생명과 재산뿐만 아니라 국토방위와 국가이익을 수호해야 할 막중한 직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던 수많은 국민을 구조하고,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데 모든 권한과 권력을 행사해야 함에도 전혀 그렇지 못한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게 아닌가요?

대통령은 이 나라의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고 말해 왔습니다. 이제 대통령 임기는 35개월뿐입니다. 더 많은 일을 하려고 덤벼들다가 일주일 동안 병치레나 하는 무리수를 두려 하지 말고, 기왕에 벌여 놓은 일을 잘 마무리하는 수행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세월호 사고 특별조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잘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규명과 안전사회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놓고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대통령령을 만들어 놓지 않은 책임 역시 대통령이 져야 할 판국입니다. 왜냐하면 특별조사를 사실상 방해, 부정하려는 또 다른 작위의 혐의가 노골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를 받아야 할 기관의 공무원에게 조사기구의 기획 조정업무를 맡기려는 음모는 마땅히 발본색원돼야 할 새로운 진실규명 대상입니다. 그 관료주의 자체가 조사 대상인데 그걸 공무원에게 맡기다니요?

이석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두번째)와 특조위원들이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시행령 철회를 위한 기자회견을 마친 후 농성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요번 재·보궐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완승했다고 해서 불법 선거자금과 자원외교비리 수사를 늦추거나 일방적 방식으로 4대 개혁을 강행하는 일이 있어선 안됩니다. 권력의 자만과 불손은 국민 불행만을 자초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많은 법률가들이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순방 직전 열린 세월호 대책 현안회의에서 지적했던 적이 있는 것처럼 해양수산부 장관은 문제의 대통령령을 철회, 폐기해서 조속히 특별조사가 개시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아직도 길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피해 유족을 대통령이 평상심을 발휘해 조금이라도 배려하고 보살피려고 한다면 부디 이들의 간곡한 호소를 수용해 줘야 합니다.

만약 장관이나 국무조정실장이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고, 국민호소를 정면 거부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신록이 우거진 5월은 결코 눈부신 계절의 여왕이 아니라 암담한 미래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대통령의 책임이며 우문현답조차 거짓말임을 자백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권력 행위는 비정함이나 변칙이 아니라 부드러움과 정상화여야 합니다. 대통령은 지지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과 시민과 유권자를 하늘과 같이 모시고, 부모님같이 섬기는 헌법 가치를 존중하는 준법자여야 합니다. 부디 가정의 달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바랍니다.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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