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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이 끝났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들이 대거 연루된 성완종 사건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뒀다. 반면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전패함으로써 날개 없는 추락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 결과를 두고 ‘어이 상실’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작 심판받아야 할 대상은 환호하고, 엉뚱한 쪽이 역으로 심판을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결과는 거의 새정치연합의 거듭된 패착에서 비롯되었다. 선거를 치르면서 그들이 의존한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은 분열-통합의 구도였다.
이에 따라 당의 원로와 구세력까지 총동원하여 집 나간 옛 동지를 제압하러 다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실정을 규탄하고 민생 이슈를 점화시켜 선명한 정치구도를 만드는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런 가운데 지지층은 흩어졌고, 야권의 자중지란은 심화되었다.
성완종 사건이 터지자 새누리당은 전패 위기에 직면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야당은 완전히 좌충우돌했다. 처음에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했다. 특검 도입에 소극적이었는가 하면, 이완구 총리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선에서 정국을 조율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당이 참여정부 시기 성완종 특사를 거론하며 물타기할 때도 새정치연합은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럴수록 야당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역공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새정치연합은 뒤늦게 정권심판의 칼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칼을 꺼내 들고도 계속 머뭇거렸다.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생겨도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등 허세 부리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들은 성완종 사건을 철저하게 정치공학적 거래와 흥정의 대상으로 다루었다. 여권이 물타기로 나올 때 우리도 발가벗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 낡은 정치를 척결하는 계기로 삼자면서 공세적으로 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말하며 큰소리치는 코미디가 펼쳐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시 관악구 난향꿈동지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음료를 마시고 있다. _ 연합뉴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친노라고 불리지만 전혀 노무현스럽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자금 차떼기 수사를 할 때 정권을 걸고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측근인 안희정, 이상수, 이재정, 정대철 등이 줄줄이 감옥으로 갔다. 본인은 이것이 발단이 되어 훗날 탄핵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그렇게 하고서야 지금의 여당인 한나라당의 기세를 꺾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싸움의 기본을 모른다. 당내 파벌 싸움에서는 기세가 등등하지만 새누리당 권력기술자들과 맞서기만 하면 한없이 오그라든다.
이번 재·보선 전패를 새정치연합은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상태로 갔다면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은 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새정치연합이 사는 길은 사력을 다해 혁신동력을 발굴하는 일이다. 먼저 분열-통합의 패러다임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명백히 제1야당의 기득권 프레임에 다름 아니고 야권의 혁신을 가로막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진보언론, 지식인 할 것 없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막연한 신화에 사로잡혀 현실의 성찰에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새정치연합 재·보선 전패 소식을 전하는 진보언론들은 일제히 ‘분열’이라는 단어를 기사의 맨 앞에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관악을의 경우 19대 총선 결과는 오신환 33.3%, 이상규 38.2%, 김희철(친야무소속) 28.5%였다. 이번에는 오신환 43.8%, 정태호 34.2%, 정동영 20.1%였다. 분열이 문제라면 오히려 19대 총선이 더 문제였던 것이다. 정동영의 과오를 지적할 양이라면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 분열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정작 더 중요한 핵심은 새누리당 후보가 약진했고, 새정치연합 후보는 19대 총선 때의 통합진보당 후보보다 더 저조했다는 사실에 있다.
지금 야권에는 분열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서로 치고받고 논쟁함으로써 담론을 지배해가는 전략이 절실하다. 광주 서을에서 천정배의 당선은 더 이상 야권 지지층에서조차 분열-통합 프레임이 통하지 않음을 입증했다. 다양성의 힘은 획일성의 힘보다 더 세다. 야권의 혁신과 재편을 둘러싼 치열한 내부 담론투쟁과 정치경쟁은 2016~2017년 선거 공간에서 야권이 의제, 이슈, 매스컴의 헤드라인을 점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부 경쟁체제를 만들고 국민의 역동적 참여를 야권으로 끌어들여 그 정치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세력이 야권을 대표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세력교체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세력교체 없이는 결코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 야권이 사는 길은 창조적 파괴의 동력을 재생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고원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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