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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를 두고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지난 9일 권한대행이 된 이후 그의 자세가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고건 총리가 대통령 대행을 하던 모습과 확연히 달라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본분을 넘어 대통령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그제 유일호 경제부총리 유임을 국회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황 대행이) 대통령이 된 것처럼 (국회) 출석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흘리는데, 대통령 된 게 아니다”라고 꼬집은 것은 이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어제 보수 일색의 학계·언론계 인사들과 오찬간담회를 하면서 참석자를 밝히지 않다가 뒤늦게야 마지못해 공개한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권한대행답지 않은 비밀주의에 ‘반쪽 소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황 대행이 개인적 성향에 따라 국정을 이끄는 것을 넘어 정치적 위상 강화 등 또 다른 일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황 권한대행에게 부여된 법적 지위와 그에 대한 시민의 요구는 오직 하나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비상시국에서 관리형 통치권자에 머물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권한대행은 국정의 틀을 새로 짜고, 방향을 정할 권한이 없다. 행정부 수반의 자리에 있지만 시민에 의해 직접 뽑힌 권력이 아니라서 권리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유일한 대의기구인 국회의 의사를 물으며 국정을 관리하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왼쪽에서 두 번째)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권한대행 자격으로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황 대행 체제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와 대외정책의 안정적 관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갈등을 유발했던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은 절대 해서 안된다. 시민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통해 박 대통령 정책도 탄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 대행은 보수정권의 취지를 이어간다는 이름 아래 박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집행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국정교과서 도입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같은 논란이 큰 사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공직사회가 복지부동에 빠지지 않도록 다잡으며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정운영의 방법에서도 관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여소야대의 정치권과 소통하면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세균 국회의장 및 야당과의 의견 조율이 특히 긴요하다. 유 부총리 유임도 국회와 야당을 찾아 의사를 타진했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에 대한 의전을 요구하듯 국회 출석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국회에 나가 국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혹여 야당과 대립하면서 보수의 대표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발상을 하고 있다면 애초에 버려야 한다. 어제 야 3당이 요구한 대로 정당 대표들과 만나 국정운영의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에 책임이 있다. 법무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대선 댓글 개입을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 검사들을 좌천시켰다. 이 과정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을 표적감찰로 압박해 물러나게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을 비판한 기사를 쓴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에 대한 법적 처벌을 추진해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공안적 시각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독주를 뒷받침해온 주요 인물이었으니 촛불시민들로부터 퇴진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황 대행은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여당으로부터도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고 돌변해 논란이 있는 정책에까지 손을 댄다면 대행의 지위를 넘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수개월간 대선 정국이 펼쳐지면서 모든 현안이 분출할 것이다. 이럴 때 황 권한대행이 공정한 관리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황 대행은 박 대통령을 탄핵한 시민들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곧 국회의 의사를 받드는 것임을 인식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개인적 욕심은 금물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도기에 국정을 떠맡은 황 대행이 자신의 문제로 새로운 갈등을 불러서는 안될 것이다. 자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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