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특별법이 제정됐다. 수색이 종료됐다. 선장과 선원 등에 대한 재판에서 1심 판결이 선고됐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세월호 참사에 관한 주요 뉴스들이다.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 수색을 담당하는 정부 그리고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 이 모든 국가기관들이 세월호 참사는 이제 정리되어 가고 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 이제는 세월호 참사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부도덕이 사회 곳곳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부도덕을 바로잡아야 할 정부, 국회, 법원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도덕도 바로잡아야 하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 국회, 법원도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안전해지는 길이자 참혹한 고통 속에 스러져간 생명에 진 빚을 갚는 일이다.

이번만은 잊지 말자!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만족시킬 만한 변화가 있었나? 지금까지 그런 변화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이런 변화가 이루어질 기반이라도 마련됐나?

얼마 전 판교 공연장 참사에서 보듯이 현실적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변화를 이끌어낼 수단으로 여겼던, 그래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가족을 잃은 슬픔을 미처 치유하기도 전에 그 제정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특별법은 우리들의 바람과는 달리 매우 무력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수사권과 기소권 행사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은 어려워졌고, 조사권도 약해졌다. 이에 따라 특별법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당장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회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정리됐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많은 국민들의 바람과 다른 모습으로 특별법이 제정됐다는 것은 참사 이후에도 정부, 국회, 법원이 제대로 된 역할을 여전히 못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기존 질서로부터 이익을 보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강한지도 보여 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가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완의 특별법을 보완하기 위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 서명을 호소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먼저 생명보다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도덕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의 안전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벌였던 국민들의 여러 활동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슬픈 역사의 되풀이에 불과하였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304명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도 깨지 못할 바위가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반복되어서는 안될 깨달음만 얻고 물러서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잊으라고 해서 잊어서도 안된다. 사람의 생명이 존중받아 어디에 있든 안심할 수 있는 나라에서 잠시라도 살고 싶다면 세월호 참사라는 슬픈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기회가 주는 길은 거칠며 고된 보행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고 나서 다시 한탄하느니 어려워도 거친 길을 가는 것이 백번 낫다. 도축될 것을 알면서도 도축업자를 위해 살을 찌우는 양떼들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앞으로 미흡한 특별법을 보완하기 위해 특별법에 따른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안전한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안전과 관련된 기존 법령을 검토하고, 다중이용시설을 점검해야 한다. 이런 일들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를 잊으라는 세력들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 사회를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바꾸고자 하는 우리가 해야 할 계란 던지기이다. 포기하면 지금까지 던진 계란만 헛되게 된다. 헛된 일이 되지 않도록 제대로 끝까지 던져야 한다.


박주민 | 변호사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