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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제 금융감독원 부원장의 자녀 혼사를 둘러싼 축의금 논란이 뜨겁다. 지난 주말 치러진 혼사에 금융회사 사람들이 돈봉투를 들고 장사진을 이뤘다고 하니 그럴 만하다. 논란이 커지자 당사자는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을 어떻게 막느냐”고 항변하고 있지만 청렴과 도덕, 투명성을 최고 가치로 두는 금감원 고위간부의 처신치고는 군색해 보인다. 아직도 이런 풍경이 우리 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조 부원장 자녀의 결혼식 때 축의금 봉투를 든 사람들이 두 줄로 20m 이상이나 섰다. 기자가 일일이 확인해 보니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금융사의 핵심 관계자는 물론 LIG, 미래에셋, 부산은행, 러시앤캐시, SBI저축은행 사람들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절대 갑’의 자녀 결혼식에 ‘절대 을’들이 총출동한 셈이다. 조 부원장은 논란이 커지자 “결혼 사실을 원내 전·현직 임직원 등 일부에게만 알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스스로를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언론이 사안을 부풀리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가 놓친 게 있다. 금감원은 금융권의 절대 갑이다. 더구나 조 부원장은 은행의 건전성을 관리·감독하는 총책임자다. 당장 자신의 자식 혼사가 금융회사에 어떻게 비칠지 모른다면 고위공직자 자격이 없다. ‘갑’의 혼사가 겉으로는 몰래 진행되지만 뒤로는 널리 알리며 진행된다는 것은 ‘을’ 사회의 상식이다. 조 부원장은 오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중앙에서 지방까지, 그리고 시중은행에서 저축은행 사람들까지 총동원돼 축의금을 내는 모습은 ‘절대 갑의 존재감’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축의금 봉투 다발을 보며 위험하다고 느꼈다”고까지 말할까.

이렇게 누구나 문제점을 인식할 정도였는데도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거나 ‘청하지 않은 사람의 축의금은 돌려보내겠다’는 식의 대응은 무책임하다. 조 부원장은 최근 감사원이나 공정위 고위공직자들이 축의금 사절에 가족·친지만 참석하는 ‘차분한 혼사’를 치르는 것을 음미했으면 한다. 이들이라고 자식의 결혼을 널리 알리고 축복받고 싶지 않을 리 없다. 공직자들의 처신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처신은 법의 강요가 아니라 마음가짐에서도 나와야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언론 보도가 왜곡됐다고 따질 게 아니라 자신부터 되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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