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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를 던질 때가 왔다. 대학통합네트워크가 교육개혁을 이루어낼 비책이다. 대입개선과 고교서열화 해소만으로 교육개혁을 이룰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대입제도를 개선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고교서열화는 대학서열화의 종속변수다. 필패 전략이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대학서열화 해소와 교육다원체제로 나아가는 필수정책이다. 전국 10개의 거점국립대를 ‘한국대’로 묶고 공동학위를 주는 방안이다. 전체 입시생의 8% 내외를 수용할 수 있다. 향후 이 숫자는 30% 내외까지 확대된다. 서울대를 뺀 지방거점국립대 9개에 총 3조원을 투자하면 연·고대 수준이 되고 총 5조원을 투자하면 서울대 수준이 된다. 순식간에 인서울과 지방대의 구분을 허물 수 있다. 카이스트와 포스텍을 지방대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 때문에 발생한다. 모든 사람이 SKY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극심한 병목현상이다. SKY, 카이스트, 포스텍, 의대 등을 포함하면 입시생의 3% 내외가 된다. 한국 중산층과 상류층을 합치면 70% 이상이 되는데 3%는 절대적으로 적은 수치다. 조국 사태로 또다시 학종과 정시 논쟁이 불붙었다. 쓸데없는 논쟁이다. 학종을 하든 정시를 하든 상류층에 유리하다. 학종은 원래 미국의 입학사정관 제도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제도다.
그렇다면 학종과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왜 우리와 같은 입시문제를 겪고 있지 않은가? 분명 미국에도 엘리트 대학이 있고 한국에도 엘리트 대학이 있는데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 미국에는 전국적으로 100여개의 명문대학들이 퍼져 있고 한국은 서울에 소수의 명문대학이 집중되어 있다. 대학병목과 공간병목의 완벽한 결합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대입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교육다원체제다. 곧 아이비리그, 스탠퍼드, 시카고, 존스 홉킨스와 같은 사립대학뿐만 아니라 버클리, UCLA, 위스콘신, 일리노이, 텍사스 오스틴, 미네소타, 워싱턴, 콜로라도, 플로리다 등 우수한 주립대학이 전국 곳곳에 있다.
교육병목(독점)체제를 분석적으로 구분하면 대학병목, 공간병목, 시험병목, 계급병목, 직업병목의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은 이 모든 게 일렬로 배열돼 있어 완벽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올 초 큰 화제 속에 종영한 드라마 <SKY캐슬> 속 차민혁 교수의 피라미드 집착은 상징이 아닌 리얼리티다. SKY에 의한 대학병목, 엘리트 대학의 서울 집중에 의한 공간병목, 상대평가로 인한 시험병목, 세계 1위의 사교육비와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계급병목, 명문대 학위를 요구하는 정규직·대기업 중심의 직업병목. 대학병목과 공간병목 해소를 위해 대학통합네트워크, 시험병목 해소를 위해 절대평가제 도입(학점제), 계급병목 해소를 위해선 사교육비 감소와 등록금 최소화 또는 무상화, 직업병목 해소를 위해선 사회경제적 개혁과 복지제도 확충을 들 수 있다. 곧 교육개혁의 전체 방향은 가장 중요한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두고 나머지 방안들을 패키지로 엮어 가야 한다.
지방대에 돈을 투자하면 연·고대나 서울대와 같은 대학이 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스루프 공과대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대학은 MIT를 모델로 1920년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지 헤일을 중심으로 연구비와 인재를 끌어모아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적인 명문이 되었다. 스탠퍼드대학도 1950년대까지만 해도 ‘듣보잡’이었다. 스털링 총장과 공과대 학장인 터먼의 리더십으로 스탠퍼드는 불과 20여년 만에 세계 정상이 될 수 있었다.
지방대도 ‘한국대’로 이름을 바꾸고 대학 인프라 강화, 연구비와 장학금 확충, 총장과 학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결합된다면 단숨에 연·고대 수준이 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인 연구중심대학으로 기능해 경제성장의 위대한 엔진이 될 수 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에 서울대 수준의 학교를 만드는 데 국회가 반대하겠는가?
사회통합에도 대단히 좋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향후 30~40개 대학들을 포함할 계획이라서 전체 수험생의 30% 내외를 수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학종이든 정시든 아무 상관이 없다. 대학은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되고 학벌사회는 무너지고 교육독점체제에서 교육다원체제로 전환된다.
대학통합네트워크와 공동학위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이제 문제는 이 공약을 실행할지 말지다. 이렇게 간단하고 명쾌한 신의 한 수를 던질 수 있을까?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의 리더십과 결단력에 한국교육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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