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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이념에 의해 틀 지어졌던 조선은 18세기에 이르러 국가의 기본 원리가 무너지고 성리학적 규범이 내파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조선은 두 차례의 커다란 전쟁과 함께 비대해진 양반계층의 걷잡을 수 없는 탐욕과 부패, 붕당화로 마침내 국가 공동체 전체가 해체될지도 모를 지경으로 치닫게 된다.

이제 성리학적 이념과 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철학과 규범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중앙 정치에서 소외된 일단의 유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새로운 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 이벽을 중심으로 한 천진암 강학회가 자리한다.

1777년부터 7~8년간 이어진 이 모임의 절박한 문제는 무엇이었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성리학적 원리와 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었을 것이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 극한에 이른 정신적 공허함을 채워가는 길이란 확신이 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눈 돌리게 만들었다. 이런 갈망과 혁신의 노력이 깨어지면서 조선이 맞이한 비극적 결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그렇게 희생된 이들을 시복하기 위해, 200여년이 흐른 뒤 그들이 옳았음을 세계에 선포하기 위해 교황은 한국을 찾았다.

21세기를 사는 이 땅의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우리는 국가가 내파하고 백성이 죽어가던 그 시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비록 근대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덕택에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때와 무엇이 크게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87년체제라 부르는 민주화 이후에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경제와 자본의 압박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건들은 다만 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각종 경제지표와 실업률, 심각한 소득 불균형, 출산율과 자살률 등 수많은 수치는 이런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으며, 절망과 냉소가 우리를 휘감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연 과장된 표현일까.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야 할까. 이 절망과 냉소를 넘어설 새로움은 무엇일까. 오늘날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학은 이미 근대적 패러다임의 한계와 함께 새로운 사유와 사회체제가 필요함을 절박하게 주장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위기에 서학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와 체제에의 열망을 일깨웠던 그 시간이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새로움을 향한 싹으로 트이기를 바란다면 무리한 요구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직후 구호시설 '도노 디 마리아'를 찾아가 한 아이에게 입맞추고 있는 모습. 이날 교황은 구호시설에서 야만적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베풂과 관용의 가치를 되찾아야 함을 강론하였다. _ AP연합


분명한 것은 그 새로움은 한계에 이른 자본주의적 체제와 물질 만능의 사조를 극복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목소리를 지니지 못한 이들의 삶이, 그들의 생명과 실존이 존중받는 새로운 문화와 사회체제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정 종교의 수장이 아니라 이제껏 보여주었던 프란치스코란 인물의 가르침과 외침이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교황의 방한을 환호하는 까닭은 그가 전 세계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급격하게 해체되는 우리의 삶과 생활세계를 새롭게 만들어갈 신념과 사상을 외치고 실천하는 그의 인격 때문이며,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대적 표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독재를 경고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물질만능의 문화와 사회에 거침없이 맞서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복음의 기쁨>에서 “온갖 불의와, 온갖 허위의식에 맞서”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두려움 없이” 시대의 변화를 위해 뛰어들라고 권하고 있다. 이 시대의 위기와 반인간적 사태를 보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척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것은 결코 기존의 체제를 부정하는 어떤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계,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 지금 아파하고 죽어가는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죽어가는 마음,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자는 새로운 복음화의 강력한 권유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들에게 교황은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이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원하지 않았던가. 그의 말처럼 시간이 공간보다 더 중요하다. 그의 행동과 가르침이 인간다움을 이룩하고, 인간의 존엄함을 드러내는 삶의 표징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가 정신적 새로움으로 향해가는 엄중한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신승환 | 가톨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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