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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보았던 영화 <명량>에서 내게 무엇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온 것은 명장 이순신의 빼어난 리더십도 인상적이었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민초들의 모습이었다. 요사이 내가 알고 있는 한 어르신 때문이다.

“어르신, 간밤에 편히 주무셨어요?” 광주보훈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나의 하루 일과는 이상문 어르신께 아침 신문을 가져다 드리는 일로 시작된다. 2012년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일이다. 이상문 어르신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머나먼 인도네시아에서 항일투쟁을 하셨던 애국지사이다.

보훈요양원은 국가유공자나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이다. 생존 애국지사의 경우 워낙 고령에다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곳 광주보훈요양원에는 이상문 어르신, 김영남 어르신 이렇게 두 분의 애국지사가 입소해 있다.

일은 여느 사회복지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산책을 돕거나, 난청으로 소통이 불편한 어르신을 대신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전달하기도 한다. 어르신은 특히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필요한 책을 구해드릴 때도 있다.

그때마다 항상 어르신은 “박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현하신다. 어르신이 우리를 위해 한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매번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죄송스러움을 함께 느낀다.

일제 때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항일운동을 한 이상문 어르신 (출처 : 경향DB)


1945년 8월15일 광복. 감격스러웠던 그날도 벌써 69해에 이르고 있다. 어르신을 포함해 국내에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는 100여명이라고 한다.

당시 혈기 왕성했던 청년들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났거나, 구순(九旬)을 넘긴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이상문 어르신도 지난 5월 94번째 생신을 맞이했다. 세월호 사고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어르신의 반대로 생신잔치를 못해드린 것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2012년 입소하셨을 때에 비해 많이 약해진 몸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무언가 어르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앞선다.

얼마 전에는 나의 이런 초조함이 경각심으로 바뀌는 일이 있었다.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행사를 진행했었는데, 아이들 누구도 한국전쟁이 언제 발발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언론에서 역사의식이 낮아지고 있다는 말만 들었지 실감이 나지는 않았는데, 직접 겪어보니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었다.

이는 비단 한국전쟁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많은 애국지사들이 점차 우리 곁을 떠나가면서, 광복절의 분위기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태극기 게양과 같은 형식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예우와 존중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흐려졌다. 이번 8·15 광복절이 부디 단순한 2박3일의 황금연휴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걸 후손들이 알까 모르것네.” 영화 <명량> 말미 한 병사의 가벼운 농이 새삼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박인숙 | 광주보훈요양원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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