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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배 | 변호사

 

인간사회는 긴 역사 동안 발전하고 배우면서 인권의 중요성을 깨달아왔다. 자유와 권리보장이 진전하기보다는 퇴보한 사회도 있지만, 국제사회의 발걸음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 노예제도, 고문 등 인간 평등과 존엄성에 반하는 것들은 사라지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문제도 모두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개선되어 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권이란 진보나 보수의 이념 문제도 아니고, 국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이 가져야 하는 필수적인 권리이며 국제적으로 보편성을 띠는 것이다. 인권을 향한 발걸음은 경제발전이나 기술발전을 이유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보호받지 못하면 가장 침해되기 쉬운 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에서는 시민단체와 국제기구들이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국가적으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었다.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반은 그 보호기구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위는 행정, 입법, 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는 인권위가 권력기관으로부터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감시하고 견제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인권위의 위상과 독립성은 점점 유명무실해졌다.

 

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인권위는 국민의 인권을 위한 기구인 만큼 이를 총괄하는 인권위원장은 인권에 관한 경륜과 전문성은 물론이고 인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비전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3년 전 임명 때부터 인권에 관한 경륜이나 전문성과 비전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인권 단체 등에서 임명을 강력 반대하였음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하였다. 이번에 다시 청와대는 현 위원장을 연임시키겠다고 발표하였고, 그 이유로 현 위원장이 국민의 인권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보호하는데 일조했으며, 국제사회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던 북한 인권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1994년부터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기사들을 실어 왔고, 북한 인권보고서를 매년 발행하고 있으며, 유니세프도 북한 여성과 아동 상황에 관해 파악한 분석보고서를 냈다.

도대체 현 위원장은 임기동안 인권과 관련한 문제들의 개선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이명박 정권 하에서 유엔 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근본적으로 검열기구로 활동하고 있다고 비판하였고,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가 축소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광우병 위험성에 대해 방송을 한 ‘PD수첩’의 제작진들이 검찰에 의해 무리하게 기소되었지만 인권위는 아무런 입장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법정에서 결국 무죄로 판정되었다. 인권위가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진정사건을 각하하였으나 법정에서 불법사찰이 사실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현 위원장 임기동안 국가인권위가 인권 보호에 힘쓰기는커녕 오히려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 탄압에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현병철 위원장을 연임시키려 한 것은 인권위가 인권침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고 정부의 입장에 동조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 이러한 형태의 연임은 보은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써 인권위의 권위 추락을 가속화하고, 국가인권위는 물론이고 다른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정한 직무수행을 방해하는 선례가 될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이 말했듯이 “정의가 물처럼 흐르고 정당성이 세찬 개울처럼 흐를 때까지” 우리는 인권 보호를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이렇게 멈춰서는 안 되는 인권보호를 위한 인권위의 과제수행에 걸림돌이 되어온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은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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