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청와대가 검찰의 불법사찰 수사결과 발표 직전 일부 언론사에 연락해 “노무현 정부의 민간인 사찰 사례도 나올 테니 균형 있게 다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국기문란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만으로도 사죄해야 할 청와대가 반성하고 참회하기는커녕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청와대의 치졸하고 뻔뻔한 행태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경향신문이 복수의 언론사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수사 발표 당일 오전 청와대 관계자들이 몇몇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과거 정부의 직권남용 사례가 발표될 것이다. 이를 (현 정부 사례와)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줄 수 있느냐”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기자는 “회사에서 ‘청와대 부탁이 있으니 참여정부 사례도 잘 챙겨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고, 또 다른 기자는 “정치부장이나 국장, 사장급에서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자료에 ‘과거 정부 시절 직권남용 사례 및 경위’라는 항목으로 2000~2007년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민간인들의 동향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는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2010년 검찰의 1차 수사 당시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폭로하며 시작된 재수사의 본류와 거리가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검찰이 ‘물타기’를 위해 손발을 맞췄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검찰 불법사찰 공식 브리핑만 공개 (경향신문DB)




그제 수사결과 발표 뒤 청와대는 박정하 대변인 명의 논평을 통해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관련됐다는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심정이다.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각별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면 설명도 아닌 서면 브리핑에다 분량도 단 두 문장에 불과했다. 형식과 내용 모두 공식 사과로 받아들이기엔 매우 미흡했다. 이날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한 이명박 대통령도 불법사찰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내곡동 사저 의혹 수사결과에 대한 정치권의 반발을 두고 “그게 바로 정치”라고 응수했다. 자신을 향한 비판론을 ‘정쟁’으로 폄훼하는 특유의 어법을 유감없이 구사한 셈이다. 청와대가 불법사찰 수사결과를 두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기보다 물타기에 나선 배경을 짐작할 만하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결과를 미리 보고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사에 전화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과거 정부의 불법사찰 사례가 수사발표에 포함된다는 ‘고급 정보’를 어디서 들었다는 말인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법무부에는 발표자료를 보내지 않았고 대검찰청에만 미리 보고했다. 대검에 보고한 자료가 법무부를 거쳐 청와대에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역시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 권재진 법무장관과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한상대 검찰총장의 합작품인가. 법무부와 대검은 수사결과 발표를 청와대와 사전 조율했다는 의혹에 대해 명확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