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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중구 문학의집에서 열린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이곳만은 지키자’ 시민공모전 시상식 참석자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부문상 중 갑자기 ‘환경부장관상’이 사라지고 ‘환경보전특별상’이라는 새로운 상이 생긴 것이다.

시민단체가 주최해 시민들이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발굴해 추천하고, 환경부와 문화재청이 후원하는 방식으로 매년 민관이 뜻을 모으는 행사이기에 궁금증은 더욱 컸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따르면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시민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이 사라진 것은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예정지인 ‘남설악 오색지구’의 대상 선정을 이유로 돌연 후원을 못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국내 자연환경 보전에서 가장 큰 책임과 권한을 지닌 정부부처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국립공원인 설악산의 대상 수상을 반기기는커녕 사실상 수상을 반대하면서 시민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비상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이곳만은 지키자’ 상을 받은 설악산에 대해서 ‘이곳은 못 지킨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으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환경부가 ‘이곳만은 지키자’ 시민공모전의 후원 및 시상을 거부하는 치졸한 행태를 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시상식에서는 수상작 중에 4대강 사업 예정지역이 포함되자 장관상을 시상하러 왔던 환경부 소속 공무원이 시상을 거부하고 퇴장한 일도 있었다. 각각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상징적 환경재앙으로 꼽히는 4대강과 설악산의 시상식에서 환경부가 유독 과민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유가 있다. 4대강 사업에서 환경부는 국토교통부의 2중대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제 역할을 하지 않았고,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서는 아예 사업자로 나선 것이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사업자의 대변인 구실을 하고 있다. “환경부가 아예 환경부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는 전문가, 환경단체 활동가들의 탄식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환경부 소속 공무원들은 ‘이러려고 환경부 했나’라는 자괴감이라도 느끼고 있을까. 궁금하다.

김기범 | 정책사회부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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