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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이민자 출신인 세 살 소년 무카드는 총기를 난사하고 있던 호주 출신 테러범 태런트에게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달려갔다. 형들이 즐겨 하던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카드는 지난주 발생한 뉴질랜드 총기사건의 희생자 가운데 가장 어린 아이다. 

한 남자는 자신의 조국이 아닌 곳에서 끔찍한 살인들을 저질렀고, 한 아이는 조국이 아닌 곳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테러범 태런트는 이 범행을 계획하기 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사진들을 SNS에 올렸다. 그중에는 북한에 간 사진도 있었다. 또한 SNS를 통해 전 세계 극우주의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신념도 강화해 나갔다. 그가 속한 세상은 글로벌 네트워크 위에 세워진 기괴한 성이었다. 

그는 여행 중 무엇을 느꼈을까? 현지인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들을 토대로 추측하건대, 여행이 가져다주는 묘미에 흠뻑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각 나라의 인종과 문화가 주는 다양성을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색인종 이민자들을 경멸하는 선언문을 올리고 50명을 총기로 난사하는 장면을 SNS를 통해 생중계했다. 

영화 <그린 북> 포스터

영화 <그린 북>을 보면, 당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의 안전을 위한 가이드북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한 일명 ‘그린 북’이다. 책 속엔 이곳에서 잠자고 저곳에서 먹으라는 친절한 정보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다. 흑인들에게 인도주의적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의 경계를 정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머물러라. 이 이상 넘어오지 마라’라는 경계표다. 마치 아우슈비츠 정문에 걸려 있는 간판 위, 유대인들을 속이기 위한 문구, “노동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흑인 뮤지션인 돈 셜리가 피아노 연주를 할 때, 그 경계는 잠시 해제된다. 흑인 특유의 감성이 깃든 연주에 흠뻑 취해, 객석의 백인들은 환호하고 기립박수를 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연주가 끝나면 돈 셜리는 홀 안에 있는 화장실조차 사용할 수 없고, 그 안에서 식사도 하지 못한다. 이번 뉴질랜드 총기사건을 대하며, 마치 그린 북처럼 유혹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의 허상을 본다. 마치 세계가 서로를 이해하며 소통하고 있다는 듯한 SNS 속의 광고문구들은 오히려 관계의 피상성이라는 수렁으로 우리를 빨아들이려 하지 않는가.

영화 <가버나움>에서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난민촌에서 자신의 숙명적 삶과 씨름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불법체류자인 흑인 여성은 언제 발각되어 추방당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갓난아이를 끌어안은 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고통을 당한다. 그 선은 서로의 경계를 확정짓고, 단절시킨다. 그것은 ‘서로의 다름’ 때문에 만들어진 선이다. 그러나 정작 갈라지는 것은 사실은 너무도 닮은꼴인 ‘서로의 영혼’이다. 그것은 서로를 공멸로 이끈다. 

영화 <그린 북>에 관한 논란 중에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 인종차별 문제를 개인의 관계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견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보다는 훨씬 거대한 담론이어야 한다는 전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가장 깊은 성찰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교감이야말로 피상성의 시대를 치유하기 위한 첫번째 전제다. 개인과 개인의 교감이 공동체로 확장될 때에만 우주는 유기체로서의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세계인의 운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인식만이 편견의 경계선을 지우고 다양성 가운데의 통합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지금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이 영혼을 가르는 선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 역시 그 중심에 있다.

<추상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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