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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공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1인 시위 중이다. 이미 자신의 지역에 대규모 임대아파트가 있는데도 서울 외곽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주택이 더 들어서는 건, 근처 주택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매우 불평등한 정책”이라고 했다. 권리와 평등이란 단어를 오용하는 그는 2년 전까지 나와 같은 임대아파트에 살았던 이웃사촌이었다. 나는 8년 전, 서울 하늘 아래서 새 아파트에 전세로 살 행운에 당첨되었다. 2년마다 꼬박꼬박 이사하는 삶을 청산하고 20년간 거주할 수 있게 되니 이웃과도 친밀해졌다. 서울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절망감을 이제는 안 느껴도 된다는 그와도 회포를 몇 번 풀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입주한 비슷한 평수의 옆 아파트의 가격이 6년 만에 2배가 뛰어올랐을 때, 그 옆의 아파트가 신규 입주 1년 만에 수억원이 올랐을 때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박탈감은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에 전 재산만큼의 금액을 대출받아 내 집 마련을 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대출금 갚기가 버겁지 않겠냐고 하자 그는 어떻게든 들어가서 몇 년만 버티면 집값은 무조건 오르니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움직였던 익숙한 말을 뱉는다. “다들 이렇게 살더라고. 내가 지금까지 바보였지.”
가진 돈의 곱절을 걸었으니 그는 더 불안해졌다. 집값 상승을 전제로 도박을 했으니 조바심은 커졌다. 아파트 앞에 장애인 복지관이 건설될 때, 그는 예전처럼 별생각 없이 건물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때부터 계획이 뒤틀리고 있다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던 그는 대형 쇼핑몰 입주 예정지라고 소문났던 곳에 임대아파트 수천 가구가 조성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차별과 혐오를 구체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주거의 공공성이 어떤 의미인지를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은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큰일 날 상황을 선택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일부의 이야기일까? 아주 예전에는 ‘저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으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부 투기꾼들의 속물근성 정도로 부동산 광풍을 순진하게 해석할 순 없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면서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공부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0억원을 가진 자가 20억원을 대출받아 건물을 사는 건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겠지만, 재산이 1억원이었던 사람이 2억원을 빌려 몇 년 후 5억원의 재산을 만드는 현상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고뇌하게끔 한다. 게다가 솔직히 운이 좋았던 사람이, 힘들었던 지난날의 보상을 받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들으면 그저 열심히 노동만 하고 살아온 삶에 대한 자책 수위는 높아진다. 결국 ‘더 늦기 전에’ 가족 모두의 협력으로 일생의 선택을 한 자들에게 집값 상승은 ‘정의’가 되고 행여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는 요인들이 등장하면 자신들이 불평등하다고 착각한다.
청와대의 그분도 불안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다들 그러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사람들도 많다. 개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개인들’이 많아진 사회를 과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임대사업자가 되겠다는 초등학생에게는 죄가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집 앞에 특수학교가 생기는 것을, 공공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호재인지 악재인지 분별하려는 나쁜 습관이 길들여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평생 이렇게 살기 싫어서’ 도박을 선택한 이들은 사회적 약자와 자신이 분리되는 걸 마땅하다고 여긴다. 권리와 평등이란 단어를 오용하는 사회, 그래서 일부가 아닌 다수가 ‘누군가의 평등’을 미치도록 반대하는 모습이 해악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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