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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이파리가 새롭게 나고 있다. 달래장에 밥을 비벼 먹고, 산에서 해 온 머위, 두릅으로 찬을 하고, 쑥국을 끓여 먹는다. 온 사방 벚꽃이 환하게 핀 것을 보면서는 그저 봄이 좋다 싶기만 했다가, 산나물 찬으로 밥을 먹으니 기운이 나고,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올해 봄에는 마당에도 봄꽃들이 피었다. 시골살이 10년이 넘어서야 마당에 꽃을 심고 가꾸게 된 것. 지난가을에 둘째 아이가 심은 것들이다. 아이가 나서서 꽃을 심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마당 꽃밭이라는 것은 언제까지고 다른 일들에 밀려 뒷전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언제부터 풀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좋다고 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어쨌거나 식물학자가 되고 싶다거나, 식물원을 가꾸겠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한 아이는 초등 1학년이 되어서 제가 심고 싶은 꽃을 골라 심었다. 봄이 와 꽃이 피기 시작하자 아침마다 누나와 동생까지 셋이서 꽃밭을 들여다보고, 이것 좀 봐 하면서 자기들끼리 꽃 이야기를 한마디씩 하고는 학교에 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남아 있던 화분과 마당 빈자리에 풀과 꽃을 더 심었다. 풀꽃 가꾸기를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 거라면 여기에서 마음껏 할 수 있지. 돈도 뭐 거의 안 들고. 심으려는 것에 블루베리와 수국도 있어서, 뒷산 솔밭에 가서 솔잎 흙도 두어 자루 담아 온 다음, 화분에 심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일러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수레를 끌고 냇가에 갔다. “자갈 작은 거부터 가져와. 그러고 나서 모래도 조금 퍼 오고.” 수레에 고무 대야와 모종삽을 싣고 간 아이들은 도무지 돌아올 줄을 모른다. 냇가에서 웃는 아이들 소리가 마당에까지 들린다. 

우리집 시골살이 첫 대목은 아이 이야기다.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 생각보다 일찍 시골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려와 살면서는 시골에서 지낸다는 것,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도저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는 것쯤이야 날마다 절감한다. 그래도 서울이었다면, 아이가 셋이 되기는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가 셋이 되어 가는 동안 생각이 꽤나 바뀐 것이 있는데, 아이가 한 명일 때는 마음속에 어떤 기준이 있어서, 아이가 거기에 미치는지 아닌지 따질 때가 있었다. 두 아이일 때는 한 명이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다른 아이와 너무 다르거나 한 것이, 내가 잘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할 때가 많았고. 그러다가 아이가 셋 되고 나서는, 사람이란 얼마나 저마다 타고 나는 게 다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제는 큰아이와 둘째 아이까지 무언가 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아이들과 지내는 생활도 ‘시즌2’가 열리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이 훌쩍 커 가는 만큼 부모인 나도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날이 어찌 열릴지는 아무런 짐작도 못하고 있지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크게 어려움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내가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아침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들이 잠들 때에 같이 있고, 그러는 것. 친구 같은 아빠는 전혀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는 편인데, 날마다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아이 이야기를 듣고, 아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많아진다. 돈 버는 쪽을 많이 포기한 만큼, 식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을 얻은 셈이다. 그 덕분에 아이들과 부모, 서로가 자기 욕심만 내는 일도 별로 없고, 지금 여기서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것을 누리려고 조금이라도 더 애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휴일 아침, 아이들은 더더욱 일찍 일어나더니 자기들끼리 마당에 나가서는 호미를 꺼내들고 잡초를 매고, 꽃밭을 다듬는다. 꽃 피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꽃밭을 어떻게 가꿀지 하는 것도 한참이나 속닥거리고. 다음 장 서는 날에는 아이들하고 마당에서 쓸 물뿌리개 하나를 구해야겠다.

<전광진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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