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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시인의 외침

opinionX 2019. 2. 19. 11:29

이맘때면 시인을 생각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사랑을 쉽고 정제된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시인은 보편, 인도주의, 휴머니즘으로 호흡했습니다. 인류가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든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 윤동주 시인이 이 땅에 심은 자산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이 세상 어디에 내놔도 모두가 공감할 정서와 연민을 그의 말에 담았습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저항시인으로만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윤동주 시인을 두려워했습니다. 창씨개명이라는 민족정신에 대한 지독한 고문을 가하던 시기에, 우리의 언어로 세계 어디서나 보편타당한 인류애를 담은, 사랑을 담은 연민 어린 시를 이 땅의 누군가가 쓴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우리만의 시인이 아닌, 인류의 시인으로서 세계인의 보편 정서를 담은 시가 우리말로 쓰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군국주의자들의 땅이 아닌, 그들이 핍박하던 땅에서 그런 시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의식을 분석한다는 명목으로 어두운 생체실험실로 그를 끌고 간 것입니다. 시인에게서 느낀 두려움이 이처럼 그들이 시인을 괴롭힌 이유라면, 사실 진실로 불쌍한 존재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결국 시인을 우리 가슴에 더 깊숙이 박아서 진정한 인류의 시인으로 자라게 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바로 시인의 그런 운명이 우리에게 깊은 연민을 심어준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습니다. 조국을 잃은 슬픔과 혼돈을 뒤로하고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민중의 외침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주권을 찾은 후로 우리는 지금까지 민중의 외침으로 정권을 바꿔왔습니다. 4·19민주화운동, 6월항쟁, 그리고 촛불시민혁명이 그 외침이었습니다. 운동, 항쟁, 혁명과 같은 작명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의에 항거하고 진정한 주권을 되찾기 위해 의연하게 거리로 나서고, 무자비한 희생을 감수하고도 무폭력으로 평화를 외쳤던 100년 전의 외침이 줄곧 이어져 온 것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헌법 전문의 첫 구절이 이런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화 경험은 프랑스혁명에 이어 세계가 주목할 귀감이 돼가고 있고, 여러 경제 지표는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올랐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에 우리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던 세계가 이제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숭고한 희생으로 지고한 가치를 지켜온 우리의 정서를 그의 시 속에 담아왔습니다.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히려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힘을 그 안에 담았습니다. 처음에 연민으로만 다가왔던 그의 언어는 읽을수록, 들을수록 왜 우리 민중이 숭고한 희생으로 총칼 앞에 나섰는지 이해하게 해 줍니다. 저는 이런 우리들의 외침에 언제나 윤동주 시인이 함께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시인은 조국의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광복이니 해방이니 하는 말들을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남겨진 숙제들이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사안은 진행 중입니다. 이 사안은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라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해서 양도나 포기를 운운할 수 없습니다. 상대국도 두려움을 떨치고 사안의 본질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한은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상대가 손을 내민 상태라면 주변 국가들이 적극 동참하고, 그 손목을 잡아줘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시인의 언어는 우리 안에서 살아납니다. 시인이 말한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과 온정의 거리가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함석천 |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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