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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없는 산도 없지만 쓰러진 나무 하나 없는 산도 없다. 앉은키가 따로 없는 나무는 서 있을 땐 그리 큰 줄을 몰랐다. 산이 은밀하게 키우던 꿈 하나가 무너졌는가. 쿵, 쓰러진 나무는 한 마을이 붕괴한 듯 그 규모가 엄청나고 죽어서도 이끼를 키우고 있다. 하늘로 고독하게 걸어간 자들의 최후는 나 따위가 감히 근처에도 얼씬 못할 세계다.

‘지구에는 골목길이 참 많다’(김행숙)지만 저 길은 결국 입안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이 든다. 목구멍에서 넘어온 소리를 공들여 어려운 말로 만들어야 하는 입안은 저 골목만큼이나 복잡하다. 모든 말이란 결국 세상으로 나가 삼시 세 끼 를 구하기 위한 방편인 것. 겨우 획득한 그 먹이를 최종 운반하는 젓가락의 집요한 공격에 처마 밑의 문패 떨어지듯 어느 날 신호가 온다, 흔들리는 것이다.

안 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는 곳, 치과. 병원에 가는 것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어릴 적 읽은 <삼국지> 덕분이다. 어깨에 독화살을 맞은 관우가 수술을 받는다. 명의 화타가 아무런 마취도 없이 칼로 절개하고 인두로 지지는데 관우는 태연하게 바둑을 둔다. 고통이야 언제고 어디서나 있는 법. 피할 수 없다면 관우처럼 견디자. 그깟 시든 이 하나 뽑는 거잖아. 더구나 마취도 하잖아. 삼국지의 그 장면을 떠올리면 잇몸에 힘이 불끈 들어가고 겁을 대략 상실하는 것이다. 이는 주사 한 방에 아무런 느낌도 인사도 없이 순식간에 떠났다. 단단하다고 믿는 몸도 실은 이렇게 얼기설기 결합한 조직이었구나. 이번에는 이빨 하나이지만 언젠가는 전신이 툭!

오늘 나는 문학의 힘으로 현실의 고통을 이겨낸 셈인가. 무중력 상태에서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비스듬히 누워 간호사가 마무리 처치하는 동안, 고통의 허공에서 관운장과 다시 접선하면서 이런 글 하나 떠올려 보느니. “우리가 눈 속에 선 나뭇등걸과도 같으니까, 겉보기에 그것들은 그냥 살짝 늘어서 있어 조금만 밀치면 밀어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나무들은 땅바닥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보아라, 땅바닥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도 다만 겉보기에 그럴 뿐이다.”(나무들, 카프카, 전영애 옮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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