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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다. 얼마 전 어느 칼럼에서 ‘학생 28명을 짐으로 여기는 교사들’이라는 기사를 읽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서울 중등학교 현장에서 40여년을 보내고 4년 전 정년퇴임을 한 나로서는 그동안 겪은 여러 상황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할 당시 학급당 학생 수는 70여명, 학년당 16학급이나 되었다. 그런데도 정규교사지만 나 같은 신규교사에게 첫해는 담임 차례가 오지 않았다. 담임을 맡지 않으면 여러 학급 수업은 들어가지만 내 학급이라는 소속감이 없어 온전한 교사로 느껴지지 않던 그때의 우리는 내심 담임을 원했다. 조회·종례를 하며 학생들과 하루의 애환을 나눌 수 있는 내 학급은 1년 동안 가족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교단 40여년에서 26년간 담임을 했지만 학생들을 짐으로 여겨본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중·고교의 경우, 특히 나이든 교사들 또는 젊은 층에서도 건강 문제, 육아 및 가정사정 등등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담임 맡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략 담임의 10% 정도는 기간제 교사로 대체하는 현실이다. 교사에겐 학생을 가르치는 수업이 주된 사명이다. 그 외 담임은 학급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생활지도와 관련한 상담 등 매일 수행해야 할 많은 업무로 무척 시달리는데, 이런 어려움을 알고는 있지만 담임교사에게 행정업무나 수업시수 등 다른 업무 부담을 크게 줄여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상대적으로 과중한 업무와 담임을 동시에 맡는 경우가 생긴다.

또한 세태의 변화로 인해 학생들이 교사에게 대들거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들, 이에 일부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예민한 감정적 대응이 힘들고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학급 학생 전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져야 하는 담임의 책무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일부 교사들이 가능하면 담임을 기피하게 되는 현실이 선배교사로서 안타깝고 앞으로의 교직생활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명지대 교수들이 31일 학생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하고 있다. 사제 간 사랑을 실천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이 행사는 15년째 치러지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초에 첫 부임학교 제자로부터 초대를 받고 나갔는데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의 제자가 덥석 큰절을 했다. 1970년대 우리 반의 추억담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풀어놓으며. 그래 이거야, 교사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걸어야 해.

교사의 자존감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서도 진심이 통하는 교사, 감화를 이끌어내는 교사, 세월호 그 죽음의 상황에서도 나보다 학생들을 먼저 챙긴 교사들을 떠올려야 한다. 그분들에겐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진정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교사들의 잡무가 조금만 줄었으면 좋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어려움을 나눌 줄 아는 교사이기를 바란다.


하순명 | 전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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