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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집에 가세요.”

뒤엉켜 싸우는 노숙인들을 단속하던 경찰관이, 도무지 욕지거리를 멈추려 들지 않는 한 노숙인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큰 소리로 싸우던 50대쯤 되어 보이는 노숙인은 경찰관을 쳐다보면서 “갈 집이 어딨다고…”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저쪽으로 멀어져 갔다.

전국의 투표소마다 긴 줄이 늘어섰던 지난 15일. 평소 같으면 긴 줄이 생겼을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앞에는 줄이 없었다. 급식소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서울역 광장 곳곳에는 식사를 하지 못한 노숙인들이 듬성듬성 눕거나 앉아 있었다. 생양배추 안주를 놓고 소주만 들이켜는 사람, 기부받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 많던 선교단체의 천막도, 확성기 예배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인근 쪽방촌에 사는 한 70대 여성은 서울시립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 앞에 붙은 ‘점심 휴관’ 팻말을 보고 힘없이 돌아섰다. 휴관 예고를 미리 알지 못했다. 투표소에 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우리 같은 사람 신경이나 쓰겠어요….”

하루 뒤인 16일 오전 10시30분부터 따스한 채움터 급식소 앞에는 긴 점심 줄이 생겼다. 이곳은 코로나19 와중에도 거의 매일 문을 연 급식소이다. 급식소 측에 따르면 지난 두 달 사이 이곳을 찾는 노숙인은 일평균 150~200명 늘어 1000명에 육박한다고 했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다른 급식소들이 잠정 폐쇄된 데다 서울역 광장에서 컵라면과 초코파이를 나눠주던 선교단체들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봉사자의 발길이 끊긴 쪽방촌 사람들도 이 급식소로 몰렸다.

“미리 준비한 분량이 떨어지면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안타까울 뿐이죠.” 따스한 채움터를 위탁 운영하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복지재단의 박광빈 목사가 말했다. 급식소 측은 직원들의 감염 예방에 초비상이다. 한 급식소 직원은 “솔직히 저희도 두렵죠. 하지만 시립이고, 어려운 분들이 식사하실 곳이 없으니…”라고 했다.

노숙인들은 문 밖에서 마스크 검사, 발열 체크, 손발 소독을 거쳐 입장했고, 종이 칸막이가 있는 탁자에서 대화 없이 식사를 했다. 기침이 심할 경우에는 “정중히 나가주실 것을 요청”(박광빈 목사) 받는다. 그런 일이 번거로워 여기 오지 않는 노숙인도 많단다.

노숙인들의 반경은 여러모로 좁아졌다. 서울역 내 의자들에는 ‘접근금지’ 테이프와 함께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하여 의자 사용을 중지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서울역이 2004년 KTX 신역사로 전환한 뒤 노숙인들을 배제하는 공간 배치가 강화됐지만 코로나19 전만 해도 지금보다는 노숙인에게 열려 있었다. 인근 건물의 공중화장실이 폐쇄되며 노숙인들이 손 씻을 곳마저 줄어들었다.

길에서 자는 노숙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설·찜질방·고시원·PC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탈가정 청소년, 기숙사를 열지 않아 좁은 원룸에서 월세를 내지 못하고 밀려날 위기에 처한 대학생들…. 광의의 ‘홈리스’들은 ‘거리 두기’ ‘집에 머무르기’ ‘손 씻기’ 같은 개인위생 책임을 지키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해 요양병원, 콜센터처럼 이 사회의 ‘약한 고리’들이 조명받았고, 사태가 안정화되면 대대적인 제도 개선과 보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야가 홈리스 같은 주거취약계층에까지 가닿지는 않은 것 같다. 주소지가 있는 사람들 위주의 복지지원 특성상 긴급재난지원금도 이들에겐 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살면서 겪었던 그 어떤 경제위기보다 더 큰 위기가 올 거라고들 한다. 그 파도가 휩쓸고 지나가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에 나앉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서울시에서 3월 한 달간 중지됐던 재개발 지구의 강제퇴거 조치가 ‘재산권 행사’ 요구에 재개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프랑스처럼 숙박업계 경기부양 차원에서 홈리스들을 호텔에서 잘 수 있게 하는 방안, 미국 뉴욕주처럼 주거취약계층의 강제퇴거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우리’ 곁에 있었지만 종종 비가시화되곤 했던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따스한 채움터 박광빈 목사의 말이다. “이용자들의 숫자가 급증할 기미가 보이면 우리도 긴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숙인을 보는 관점이다. 지금 같은 시대엔 누구나 ‘잠재적 노숙인’이 될 수 있다.”

<손제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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