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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수습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단체로 부서원 지인이 운영하던 술집에 갔다. 그 부서원이 술집 주인에게 부서장부터 인사를 시키려던 찰나 주인이 대뜸 나를 보며 말했다. “부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마가 훤하게 까진’ 노안은 기자 생활에 도움 될 때가 많았다. 여러 취재원이 ‘연차가 꽤 있는’ 기자가 직접 현장에 취재하러 온 줄 알았다. 이들은 나중 내 나이를 듣곤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취재 목적은 이룬 뒤였다. 지금은 차장인데 현장에 나가면 “국장님, 어서 오세요” 인사를 듣곤 한다.
‘노안’에 얽힌 일을 떠올린 건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딘 사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호밀밭)에 나온 이브 몽탕의 동갑내기 아내 시몬 시뇨레의 일화 때문이다. “어느 날 보니 나는 늙어가는 것이고, 그 사람(몽탕)은 성숙해가는 것이더라고요. (…) 남자의 주름살은 자랑할 만한 연륜이지만 여자의 주름살은 그냥 추한 거죠.”
미투의 시대 남자의 주름살은 연륜을 나타내는 표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남자의 주름살이 혐오나 교정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여자의 경우는 다르다.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인 ‘노화’를 지연시켜야 하는 부담을 더 크게 느낀다. 사회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잣대를 여자에게 더 강하게 들이댄다.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을 찬양하면 다른 한쪽을 혐오하게 된다. 광고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와 이벤트가 미추 판별에 개입한다.
미스코리아는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대표 이벤트다. 1주일 전 미스코리아조직위에서 개최 안내 e메일을 보냈다. 미술 담당이라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줄 알고 보냈나? 외모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터라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홈페이지는 비키니 사진으로 도배됐다. 후보자 32명의 키와 몸무게가 일일이 나왔다. ‘후보자 신체 정보 실측값 변경’. 키, 몸무게를 본인 기재에서 ‘실제 측정값’으로 바꾼다는 공지다. 건축물에나 쓰는 ‘실측’이란 말이 이 대회의 은폐된 본질을 보여준다.
“화장품 광고는 타고난 자신의 외모로는 행복해질 수 없으며 자기들의 화장품을 써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사게르)고 선전한다. 구원의 문구는 때로 도를 넘는다. ‘김 비서는 왜 그렇게 예쁠까. 부회장님 키스를 부르는 메이크업 시크릿’ ‘부회장님 시선을 강탈하는 출근광채 시크릿’. 시세이도코리아의 광고 문구다. tvN 드라마 <김 비서가 왜 그럴까>의 맥락을 끌어온 광고라지만, 왜 비서가 ‘시선 강탈’을 해야 하는지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 성역할과 성·직업 차별 관념이 든 광고가 탈코르셋 운동 와중에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이 문제에 둔감하다.
미디어와 사회가 조장한 ‘아름다움’은 ‘미추’를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로 만든다. 고든 파크스는 1947년 미국 뉴욕 할렘에서 심리학자 케네스 클락이 흑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형 테스트’ 장면을 촬영했다. 사진 속 어린이는 흑백의 아기 인형 중 백인 인형을 가리킨다. ‘인형 테스트’에서 대다수 흑인 어린이들은 하얀 인형에 “좋아요”라며 긍정 반응하며 선택했고, 검은 인형은 “나빠요”라고 부정 반응하며 거부했다. 키리 데이비스의 2005년 다큐멘터리에서도 흑인 어린이들은 백인 인형을 선호한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검은 피부 때문에 자신을 추하다고 여겼어요.” 결국 ‘성소수자인 흑인 장애인 여성’이 혐오 희생의 정점에 서게 된다.
몸은 존재다. 성별, 장애, 인종, 성정체성, 몸과 외모 같은 ‘타고난 있음’은 미추 판별의 대상이어선 안된다. 당장은 그 존재에 관한 판단을 유보하며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차별과 혐오 철폐의 시작일 수 있다. ‘아름다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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