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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째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를 빼곤 칼럼을 쓸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왜 전염이 그렇게 잘되는지,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등의 글을 쓰는 것은 꺼려졌다. 각자 뉴스를 통해 많이 접했을 내용들이고, 질리도록 관련 글들을 읽었을 터이다. 기자는 ‘문송’(문과라 죄송하다)한 사람이어서 남들보다 많이 알지 못한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본인도 무슨 소리하는지 모를 글을 쓸까봐 나름 번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슬기로운 집콕 생활’이란 기사를 접했다. 집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각자가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담은 글이었다. 이거였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이라는 드라마도 있었으니, ‘슬기로운 집콕 생활’이라는 제목의 운율감은 나쁘지 않다. 누군가는 “상황이 엄중한데 농담할 때인가”라고 핀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는 하나 마나 한 말로 답하고 싶다.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말하려면 일상이 초래한 코로나 스트레스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문제를 알아야 뭐라도 더 나은 답을 궁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마스크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우선 떠올랐다. 근무시간은 물론 회의시간에도 종이 쪼가리로 얼굴을 가리다보니, 가끔 숨이 턱턱 막힌다. 일회용 마스크를 며칠 동안 돌려 쓴 탓일까. 코끝이 헐어 며칠째 빨갛다. 코로나 스트레스의 흔적이다.

퇴근 후 동료와 술잔을 나누며, 나를 알아주지 않는 야속한 세상을 탓하곤 했던 소소한 즐거움도 사라졌다. 하룻밤 알코올은 달겠지만, 장기간 격리를 감수할 용기는 없다. 주말이면 해왔던 야외 여가활동은 옛일이 됐다. 필자는 토요일 낮 ‘동네 한 바퀴’ 산책이 그립다. 이렇게 ‘갇힌 일상’이 주는 코로나 스트레스는 우리를 좀 먹고 있다. 거울을 보고, 주변을 둘러봐라. 나의 표정도, 당신의 표정도 침울할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슬기로운 집콕 생활 지침도 이런 마음의 병을 달래는 데 맞춰졌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3일 발표한 ‘국민을 위한 마음건강 지침’에서 일정한 식사시간과 수면, 전화와 메시지 등을 통한 주변과의 소통을 제안했다. 되새겨서 나쁠 건 없겠지만 ‘배고프면 밥 먹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로 들린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기자의 경험을 공유해본다. 우선 ‘나는 무조건 괜찮을 거야’라는 정신승리가 필요하다. 귀가하면 마스크부터 벗고, 수시로 들숨날숨을 쉬어본다. 퇴근 후 여가시간이나 주말에는 코로나 뉴스에 매몰되지 않는다. 확진 현황과 관련된 뉴스는 정해진 시간에만 확인한다. 이런 뉴스에 집착하면 불안감만 커지게 마련이다. 그 시간에 TV드라마 재방송을 보든, 비트 있는 음악을 큰 소리로 틀어놓든, 잠시나마 정신줄을 놓는 것은 어떨까.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2월27일 (출처:경향신문DB)

미담을 찾아보는 것도 우울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 대구로 모여든 의료진들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불친절하고 권위적이라고 생각했던 의사에 대한 선입견이 걷혔다. 경향신문 지난 5일자 1면에는 ‘거리두기 사회’의 빈틈을 메우는 이들에 대한 글이 실렸는데,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아동들, 중증장애인, 치매 노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와 상근활동가들이 소개됐다. ‘우리 사회는 최소한 품위는 갖췄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코로나19가 전 대륙에서 확산하며 사실상 ‘팬데믹(대유행)’ 단계에 진입했다는 뉴스도 찬찬히 읽어본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런 외신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먼저 매를 맞았을 뿐이다. 다른 나라보다 빨리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부가 도시봉쇄나 통행금지 등 극단조치 없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잘 대응하고 있다는 외신을 읽는 것도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됐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못 이긴다!

끝으로 턱없는 주장들은 큰 소리로 비웃어주자. “이게 나라냐.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 “특정지역에 확진자가 많다. 국회의원 잘 뽑아야 한다”. 세계적 천재지변으로 판명난 전염병까지 정치에 이용하려는 뻔뻔한 선동들을 접하면 질펀한 욕설을 퍼부어주는 것이다. “에라, 이 더러운 XX들아.” 이편이 밤샘 술자리보다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저 사람들의 ‘사리사욕’ ‘권력욕’보다 ‘그래도 이겨내자’는 당신과 나의 생각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퍽퍽한 일상에서 이만한 자기만족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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