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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남 앞에 서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역발전 적임자’ ‘나라를 구할 사람’ 등 크고 작은 선거 때 등장하는 구호에는 국민을 대표할 만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물론 정치적 자산이 풍부한 사람이 진짜 국민을 위해 나선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게 마련이다. 능력은 부족하고 자격은 없는데,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부류들은 정치적 자산이 보잘것없거나, 혹은 가졌던 것을 잃었음에도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모른다. 자신의 언행이 정치적 파장을 만들고, 여론을 움직인다고 착각한다.

[시사 2판4판]홍시를 기다리며 (출처:경향신문DB)

#안철수의 불평. 요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서 후자의 모습을 본다. 당초 안 대표는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앞세웠던 ‘새 정치’라는 재산이 있었다. 한때 호응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새 정치는 그가 정치권에 머무는 시간과 비례해 소진됐고, 지난 대선 직후 제보조작 파동이 불거지면서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그는 현실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을 야권 대표주자로 여기고, ‘문재인 대 안철수’의 구도에만 올인한다.

이명박·박근혜 국정농단에 대한 그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가. 안 대표는 촛불집회 1년을 맞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서 “가장 먼저 탄핵을 당론으로 정하고 헌신했던 것이 국민의당”이라고 했다. 그가 촛불정신을 마음에 두고, 여전히 새 정치를 가치 있게 여긴다면 그는 나쁜 권력의 폐해가 드러난 국정농단에 대해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문 대통령 때리기에 모든 걸 걸었다. “국민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무능 파노라마” “트럼프 따라하기”.

야당 대표의 권력비판은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지만, 그의 언사는 감정이 앞서는 듯하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보다 한국에 짧게 머문다며 ‘코리아패싱’을 주장하는 보수야당과 보수언론 발언을 답습해 “속이 상하고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안 세력임을 자처하는 야당 대표라면 “트럼프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는 주문은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자유한국당의 ‘아무말대잔치’에서나 들을 법한 발언들을 그는 쏟아내고 있다. 같은 당 이상돈 의원이 “문재인이 싫다.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다.

#홍준표의 착각.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여전히 불법정치자금 1억원을 받았다는 ‘성완종 리스트’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그간의 막말 퍼레이드, 대선 때 돼지발정제 논란까지…. 그는 대중에게 희화화된 보수꼴통 정치인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홍 대표를 과거 강력한 야당 대표였던 이회창이나 박근혜의 반열로 보는 사람은 없다.

홍 대표의 통장은 텅 비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 바깥에서 머무는 듯하다. “연말쯤 자유한국당이 부활할 것” “내 개인기로 당을 살렸다”는 그의 장담은 같은 당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지율 10% 문턱에서 헐떡거리는 야당 대표가 25명이나 되는 특보단을 거느린 까닭은 무엇인가. 국민들은 그에게서 ‘3류 코미디’를 보는데, 홍 대표는 제1야당 대표라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그가 국회 국정감사 중 의원들까지 대동해 미국 방문을 강행했던 것도 북핵 문제 협의를 위해서라지만, 과시욕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미국이 군사행동을 할 경우) 하루에 6만명의 인명 손상을 예상하고 있더라”고 발언을 한 것도, 미국 고위 인사들과 통한다는 영향력·정보력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을 터다. 하지만 방미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서청원 의원과의 진흙탕 싸움 와중에 던진 “깜냥도 안되면서 덤비고 있다” “정치를 더럽게 배워 수준 낮은 협박” 등 막말뿐이다.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나, 여론은 홍 대표에게 딱 그 정도를 기대한다.

#정계개편의 망상. 이런 대표들이 주도하는 통합 논의의 앞날은 뻔하다. 강경보수로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있는 한국당,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국민의당, ‘정치적 신용불량’ 정당들이 뭉쳐봐야 더 큰 불량정당이 될 뿐이다. 힘만 합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그들의 생각은 망상이다.

재산이 없는데도, 돈을 끌어다 쓰면 빚이 쌓이고, 종국엔 파산한다. 지금 안 대표와 홍 대표의 마이너스 통장에는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들의 지휘하에 연대나 통합을 모색하는 정치세력도, 민심에서 퇴출되는 불량주로 전락할 것이다. 자극적 언사, 명분 없는 이합집산으로 순간을 모면하려 하지 말지어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정치적 잔고는 안녕하십니까.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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