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다음달 7일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한다. 방문기간이 일본보다 짧다는 말, 골프시간만 빼면 실제로는 비슷하다는 식의 억지 섞인 해명도 있다. 한국에서만 국회연설이 있어 특별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사실 이번 방문은 잘해도 본전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미관계는 미국의 자국위주 및 대북강경 정책에 한국이 끌려가는 형국이며, 군사옵션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위기국면에서 동맹비용이 극대화되고 있기에 미국이 무엇을 요구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도다.

대선부터 시작된 트럼프의 언행은 변함이 없다. 미국의 제도가 제어하고 교육시킬 것이라는 낙관론은 힘을 잃은 지 오래다. 트럼프는 전체의 대통령이 될 생각은 없고, 하드코어 지지자들을 위한 선거운동처럼 밀어붙일 것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걸핏하면 편을 가르고 싸움을 건다. 국가연주에 대한 자세를 놓고 흑인 미식축구선수들과 맞서고, 백인들의 인종차별시위를 두고 갈등을 부추긴다. 여당인 공화당과도 충돌하고, 자신이 임명한 국무장관을 조롱한다.

외교도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상관없다. 평화의 전당 유엔에서 북한을 괴멸시키겠다고 하고, 이란을 살인정권이라고 퍼부었다. 나토우방국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유화정책이라는 몰역사적 무례를 범한다. 전쟁이 나도 한국에서 수천명이 죽을 뿐 미국은 상관없다는 막말도 서슴없다.

이를 두고 고단수의 의도적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폭의 리더십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생 몸에 밴 협상의 습관일 수는 있으나, 그랜드전략이나 청사진은 없다고 판단된다. 주변 인사들은 자신들을 소방관이라고 부른다. 제발 끌 수 없는 불만 지르지 말라는 심정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는 말을 미국정부 고위관리에게 직접 들은 바 있다.

미·중 갈등이나 중·러 접근 등 신냉전의 지정학적 난관에다가 트럼프와 김정은의 적대적 공생의 푸닥거리 사이에서 우리 입지는 지속적으로 좁아지고 있다. 북한은 조만간 핵개발 완성을 선언할 것이고, 유리한 입장에서 대미협상에 나서려고 하겠지만, 미국은 북한이 항복하거나 붕괴할 때까지 압박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항복할 생각 없는 북한은 미국의 반응이 없을 경우 대남 핵갑질을 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역시 김정은과의 자존심 싸움을 벌이며 만들어내는 공포분위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주둔분담금, 미사일방어, 한·미·일 군사협력 등에서 밀어붙이고, 우리는 속절없이 밀릴 수 있다. 북·미의 동시갑질 속에서 우리 외교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한·미동맹이 아무리 비대칭이라고 하더라도 상호적이어야 하며, 아무리 중요해도 우리의 국익을 앞설 수 없다. 발칸반도와 함께 지정학적 저주로 불리고 있는 한반도에서 미국을 동맹파트너로 삼고 있다는 것은 분명 자산이다. 그럼에도 이면에 미국의 이익을 위해 국익에 손해가 되는 일들이 반복되는 덫이 동맹 속에 내재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의 등장은 동맹의 덫에 대한 현실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는 비즈니스적인 이익만 추구할 뿐 더 이상 인권, 민주주의, 평화, 미국의 리더십 등 가치를 덧입히지 않는다. 미국이 지금까지 평화수호의 이미지 뒤에 철저하게 가려왔던 허물을 벗어던진 것이다. 위선적이지 않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미국의 민낯은 이제 어떤 양보나 여지도 없다는 차가운 현실을 뿜어낸다. ‘미국 제일(America First)’은 국가라면 얼마든지 당연한 국익위주의 정책을 펴겠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동맹이든, 협력파트너든, 적이든 미국의 불리한 것은 무조건 뜯어고치고, 이익을 위해 수단방법을 불문하겠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필요하다. 북한의 핵위협은 물론이고, 중국의 부상은 오히려 미국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동맹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은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문제다. 안방에서조차 자동문이나 호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담대하게 우리의 이익을 피력해야 한다. 트럼프가 한국에 오면 동맹은 상호적이라는, 그리고 전쟁을 억지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목표를 포함해서 평화를 주지시켜야 한다. 평화는 적극적으로 만들어야지 현상을 관리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리더가 높은 자리에 있는 이유는 군림하기 위함이 아니라 멀리보기 위함이다. 우리의 리더가 군림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제 멀리보기를 바란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답게 국민의 힘을 믿고 담대하게 가야 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